◎70년대 강남 아파트붐 타고 고속 성장우성건설은 94년 매출 1조1,910억원, 자산총액 2조800억원, 계열사 5개, 관계회사 9개를 보유한 재계순위 27위인 우성그룹의 모기업이자 주력기업이다.
74년 20세로 외국어대학 3학년이던 최승진부회장(42)이 학생신분으로 서울 동대문구 중화동에 있던 부친의 땅 4,000여평을 빌려 블록공장을 세우고 중화동의 이름을 딴 중화주택개발을 세운 것이 모태가 됐다.
70년 후반 강남에 불어닥친 아파트 붐에 따라 78년 강남으로 본사를 이전한 최부회장은 상호를 우성건설로 바꾸고 서초구 반포동에 지은 408가구의 우성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초―잠실―개포동등 강남 요지마다 아파트를 건설, 수년만에 국내 굴지의 아파트 건설업체로 성장했다. 94년의 경우 우성은 주택부문 매출이 현대산업개발과 현대건설에 이어 국내 3위였다.
이같은 성장을 바탕으로 우성은 80년대부터 유통업과 레저쪽으로 사업진출을 확대하는 등 경영다각화를 시도하고 87년에는 타이어와 모직 등 제조업에도 뛰어들면서 중견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우성이 이처럼 중견그룹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최부회장의 부친인 최주호씨(82)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우성그룹회장을 맡고 있는 최씨는 한국모방, 한일나이론 등을 설립, 60년대 후반까지 재계를 주름잡던 섬유재벌이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면서 90년 초반까지 성장을 거듭해 온 우성은 그러나 94년 말부터 쌓여온 미분양아파트로 자금이 묶인데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인수했던 타이어나 유통업체들이 예상외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서 자금난을 겪어오다 부도라는 비운을 맞게 됐다.<서사봉기자>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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