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가 어느덧 후반으로 접어들었다. 20세기도 얼마 안 있어 끝나려 한다. 그뿐이 아니다. 다른 세기에 살았던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천년의 단위가 바뀌는 것을 경험하는 인류사의 소수에 속하게 되었다.1년중에도 나날이 반성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지만 해가 바뀌면 묵은 해의 섣달 그믐날과 새해 첫날은 어제 오늘처럼 별다른 감회없이 넘어갈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몇년 후면 십년 백년 천년의 단위가 동시에 바뀐다는 심적 부담은 우리에게 엄청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를 되찾은지 반세기라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와 민주와 인권을 누리며 반세기동안 살아왔던 것도 아니다. 그것만인가? 우리는 아직도 분단상태에 있다. 통일이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올 수도 있다고 희망을 걸어본들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짓누르는 과제는 21세기로 넘어갈 것 같다.
「새로운 시대는 첨단 정보화시대」라는 구호같은 말에 그런가보다 하고 넋을 잃고 있는 사이 우리는 시간의 단위가 바뀌기 전 무엇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밀물같은 새것들에 몸을 내맡겨야 한다. 그렇게 자신있게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본문화도 얼마 안 있어 당당히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진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일이란 먹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먹고 살기 힘들어 눈돌릴 겨를이 없었다는 핑계를 너무나 오래 둘러대었다. 이제 21세기가 점점 다가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몹시 당황하고 그동안 게을렀던 것에 대한 자괴감을 버릴 수 없다.
천부적으로 문화감각이 뛰어난 것을 자부하면서도 이렇게 투자를 하지 않고 문화에 무관심한 나라가 또 있을까 의심스럽다. 그나마 지난해는 광복 50주년이라고 「세계를 빛낸」 사람들이 칭송받긴 했지만 세계가 열려가는 지금 우리는 내 놓을 준비가 안되어 있다.
씨를 뿌리지 않고 거둘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당장 가시적인데 급급하다보니 꽃을 따서 모래에 심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거의 우리의 철학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세계가 첨단 속도로 돌아가더라도 해야 할 것은 순서를 밟아서 해야 한다. 그것을 안했기 때문에 우리가 불안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을 키워내는 일에 인색한 나라는 패배할 수 밖에 없다.
20세기가 가기 전에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도 뒷감당을 할 준비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공연예술도 그 터전을 전제로 해서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