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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민논쟁 더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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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이민논쟁 더 뜨거워졌다

입력
1996.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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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합법이민 규제법안에 첨단기업들 거센 반발/“고급 외국인력 고용 제한땐 하이테크산업 치명타”미국에 반이민 물결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21세기 첨단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하이테크 관련 기업들이 합법이민 규제 움직임에 조직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기업은 미 의회가 심의중인 합법이민 제한법안은 미국의 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며 법안통과에 제동을 걸고 있다. 특히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자등 외국인 고급인력에 대한 비자발급 제한에는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미 의회는 당초 불법이민을 근절한다는 취지에서 이민법 개정작업에 착수했으나 상·하원 모두 합법이민까지 제한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었다. 하원 법사위는 매년 합법 이민자를 94년의 80만명에서 2000년까지 53만5,000명으로 줄이는 이민법 개정안을 이미 지난해 말 통과시킨 뒤 본회의에 회부했다. 상원 법안도 미국기업이 연간 고용할 수 있는 전문직종 이민자를 현재의 14만명선에서 9만명으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기업은 연방 데이터뱅크를 통해 취업 희망자의 법적신분을 확인해야 하며, 외국태생 인력을 고용할 때는 세금을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들은 저임금을 앞세운 외국인들이 컴퓨터등 첨단분야에 대거 진출,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며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 반도체, 컴퓨터 프로그래밍 분야의 미국인 평균임금은 시간당 65달러인데 반해 아시아권 고급인력의 임금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때문에 기업들은 이민자는 물론 이들 외국인력을 초빙연구원등의 명목으로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으며 그 결과 미국 사회의 주류인 백인 화이트 칼라층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앨런 심슨 상원의원(공화·와이오밍)은 『첨단분야에서 고급학위를 취득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미국인이 해마다 3만명에 달한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의회의 움직임은 미국사회에 급속하게 퍼져있는 반이민 무드에 힘입고 있으며 많은 미국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백인 전문직 종사자들은 정치행동위원회를 조직, 이민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로비활동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첨단 기업들이 의회의 합법이민 규제법안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숙련된 미국인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은 『지난해 추진했던 사업의 25%를 인재를 구하지 못해 포기했다』며 『외국인마저 고용하지 못하면 신규사업은 엄두도 못낼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합법이민 규제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의 첨단산업은 「대재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600여 하이테크 업체를 대표하는 정보기술협회(ITAA)도 외국 근로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적절한 자격을 갖춘 미국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해리스 밀러 ITAA회장은 『고급인력 양성에 소홀했던 미국 사회가 이들마저 내쫓는다면 하이테크 산업은 마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제조업협회(NAM) 전자산업협회(ELA)등 영향력있는 경제단체들도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합법이민 규제법안 반대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외국계 회사등 모두 1만4,000여 기업이 가입한 NAM은 특히 마이크로 소프트, 인텔, IBM, 모토롤라등 유수기업이 참여한 이민법 개정안 반대서한을 작성, 의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미국 주류사회 일각에서도 『이민자는 미국 경제·사회 발전의 보물』이라며 이민제한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각종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해결에 실패한 정치인들이 합법 불법을 가리지 않고 이민자를 속죄양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국 경제에서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첨단 기업들이 예상외로 거세게 반발하자 의회도 이민법안을 합법과 불법으로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특히 상원은 외국인 고용기업에 연봉의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려던 당초 법안을 연봉의 10% 또는 1만달러중 적은 액수를 선택하도록 바꾸는 등 무마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민법 전문가들은 의회가 각종 선거를 의식, 반이민 무드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민법 개정안은 여전히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백악관과 균형예산을 둘러싸고 지루한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는 미국 의회는 「국가 경쟁력」과 「중산층 유권자」사이에서 또다시 힘겨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뉴욕=이종수특파원>

◎미 첨단산업 외국인력/90년 과학자·엔지니어의 12% 차지/93년엔 컴퓨터·과학분야 박사 49%

미국의 하이테크 산업에서 일하는 전체 외국인력 숫자는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90년 미 이민국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과학자, 엔지니어중 11.7%는 외국 출생으로 나타났다. 내셔널 사이언스 재단도 93년 컴퓨터 과학분야의 외국계 박사는 49%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10년전인 83년에 비해 15%가 늘어난 수치이다.

미 노동부도 92∼94년에 전문직종의 영주비자를 취득한 외국인은 15만명, 임시 취업비자인 H―1B 비자를 받은 전문인력은 57만명이라고 밝혔다.

또 의회 자료에 따르면 해마다 미국에서 공학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의 55%는 외국인이다. 의회는 이들 대부분이 미국에서 직장을 얻으려하기 때문에 순수 미국인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며 외국인 고급인력에 대한 비자발급을 제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를 들어 상원 법안은 희귀한 능력(기술)을 가진 외국인에 대해서는 인력시장에 관계없이 취업비자를 발급하지만, 교수와 연구원들에 대해서는 비자발급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교수나 학생들은 학위를 받은 후 국내외에서 3년이상의 경험을 쌓은 후에야 미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인터뷰/미 제조업협 필리스 아이젠 교육정책담당관/“외국인력 규제 굴러들어온 복 차는격/국가경쟁력 상처주는 법안 저지 마땅”

미 의회의 합법이민 규제법안에 반대하는 미국 기업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필리스 아이젠 미 제조업협회(NAM) 교육정책담당관(52)은 『미국의 경쟁력에 상처를 주고 첨단기업을 도태시키는 법안은 저지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아이젠 담당관은 『외국출신 근로자들은 첨단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 뛰어난 생산성을 보이고 있다』며 『이들이 없을 경우 많은 기업들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사에서 첨단 소프트웨어를 개발, 연간 1억달러의 수익과 500명의 고용을 창출한 이스라엘 출신 이민자의 예를 든뒤 『그는 프랑스 등 각국의 유혹을 뿌리치며 미국을 선택했다』며 『외국인에게 비자를 제한하는 것은 굴러들어 오는 복을 스스로 차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텔사의 경우 엔지니어와 연구원들을 감독할 외국인에 대한 비자발급이 지연돼 15명의 고급인력이 일주일이상 업무에 차질을 빚은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에 대한 비자발급을 제한할 경우 미국 기업들이 당하게될 피해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아이젠 담당관은 『불법 이민자들을 막겠다는 의회의 노력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민으로 이룩된 미국에서 합법적인 이민마저 줄인다는 발상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때문에 미국인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업들은 능력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게 마련』이라며 『기득권을 가진 미국인들이 실직상태에 있다면 이는 그들의 능력문제이지 외국인들의 저임금 때문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기업들은 외국인들이 어떤 기술을 가졌느냐에 관심이 있을 뿐 그들의 피부색이나 국적은 따지지 않는다며 『미국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외국인을 언제나 환영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의회를 상대로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국익을 염두에 둔 의원이라면 미국의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 내리는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미국의 유수기업과 중소기업 등 1만4,000여 생산업체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는 NAM은 1895년 설립된 이래 1세기이상 이들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왔다.<워싱턴=이종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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