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교인 성공회 교리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천국과 지옥에 대한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그 설명에 따르면 지옥이란 『벗어날수 없는 영원한 고통과 징벌의 불구덩이』가 아니라 『신이 함께하지 않는 총체적 부정과 무의 상태』다. 또 천국은 『영원한 정지상태에 있는 완벽한 곳』이 아니고 『신의 삶에 끝없이 동참하는 곳』이다.성공회가 새 해석을 내놓게 된 것은 『가학적으로 표현된 기존의 지옥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상혼을 남겼고, 신은 학대를 즐기는 괴물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원한 불구덩이」라는 표현대신 「신이 함께 하지 않는 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한 지옥의 묘사, 천당 역시 끝없는 수행의 도장임을 강조한 해석은 내세에서의 천국과 지옥이전에 현세에서의 천국과 지옥을 생각하게 한다.
윤리와 도덕이 사라지고 본능이 지배하는 곳, 총체적 불의와 부패가 끝없이 이어지는 곳, 법과 양식을 폭력과 탐욕이 억압하는 곳, 그래서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곳이 지옥이다. 만일 그곳에 꿈과 이상, 양심과 정의를 포기할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신이 떠나버린 그곳에서 그가 아무리 몸부림치고 절규한들 누가 귀 기울여 줄 것인가. 그 절망적 상태가 「불구덩이」보다 덜 무서울까.
천국은 이세상에서 신의 가르침을 따라 아름답게 살았던 사람들이 가게되는 영원한 휴식처가 아니라 신의 삶에 동참하려고 끝없이 노력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세상에서 착하게 살았던 보상으로 얻게되는 것은 신의 삶에 동참할수 있는 「기회」이지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는 보증수표가 아니다. 꽃들이 다투어피는 평화로운 동산이 천국에 있다해도 그 평화는 정지된 것이 아니고 계속 지켜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가정·사회·나라·세계에는 천국에 가까운 곳도 있고, 지옥에 가까운 곳도 있다. 천국에 가까웠던 시대, 지옥에 가까웠던 시대도 있었다. 신을 믿느냐, 내세를 믿느냐는 문제를 떠나서 우리가 지금 천국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지, 아니면 지옥만들기에 열중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열쇠가 손닿기 힘든 먼곳에 있지않고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 희망을 준다. 하루하루 복잡한 일상에서 소모적인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인데, 그렇게 시달리면서 만들어가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구호와 실천을 자주 점검해 봤으면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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