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의 용기를 북돋우는 언어들/서울시장 조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의 용기를 북돋우는 언어들/서울시장 조순

입력
1996.01.14 00:00
0 0

◎“뜻대로 안되는게 인생” 달관의 운명론 깨우쳐줘내가 평소 애송하는 시 가운데에 영시와 한시가 있다. 영시 가운데 내가 평소 가장좋아하는 시는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의 「The Rainy Day(비오는 날)」이다. 롱펠로는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내가 졸업한 보든(Bowdoin)대를 1802년에 졸업하고 나중에는 하버드대 문학교수로 재직하였다. 내가 1957년에 보든대에 입학했을 때 롱펠로가 160년 전에 썼던 책상에서 입학등록을 한 생각이 난다.

그는 주옥과 같은 많은 시를 썼는데, 가끔은 내용을 알기가 쉽고 교훈적인 것이 있다. 이 시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는 롱펠로의 많은 시 가운데서 이 시를 가장 좋아한다. 초보의 영어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외우기가 쉽고 외우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인간은 누구나 가끔은 좌절감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 좌절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 슬픈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나에게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 사람은 견딜 수 없다. 모든 슬픈 일을 일시적인 것, 남도 다같이 겪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좋다. 나에게 닥치는 슬픔과 좌절감은 모든 다른 사람에게도 다 같이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일이 잘 안될 때,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이 시를 외우면 새삼 용기를 회복한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체 하기가 어렵다. 인생을 달관한다는 것은 필요하고도 어려운 것. 이 시는 우리에게 일종의 달관하는 방법을 깨우쳐 준다. 달관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첫째 한계를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은 나만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고 뜻대로 안되는 일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너의 명운은 모든 다른 사람과 공통되는 명운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가끔 내가 운명론자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내가 걸어온 길은 운명이라고밖에 치부할 수가 없다. 사실 달관할 수 있자면 운명론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치 앞을 못 보는 것이 인생이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장래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일생이란, 누구의 것을 막론하고 기구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기구한 우리의 운명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일생을 살아간다. 역설같지만, 운명론자라야만 자기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고, 참된 용기를 가질 수가 있지 않을까.

롱펠로는 보든대 졸업후 50주년의 동기회모임에서 유명한 긴 시를 썼다. 거기에서 그는 여러 역사의 인물을 예로 들면서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70이 넘어서도 이러한 싱싱한 감동을 가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늙는다는 인간의 운명­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앞으로 나의 보든대 졸업 50주년이 되면 시 한 수를 가지고 동기생을 만나러 갈 작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