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빈수레가 더 요란한 법이다. 돌이켜보면 전두환, 노태우 두전직대통령은 군출신 대통령답게 안보를 유난히도 강조했었다. 특히 정권의 정통성이 극히 취약했던 전정권의 안보경보소리가 컸다. 북한의 수공가설까지 만들어 평화의 댐을 건설한다고 국민성금을 거두는 법석까지 떨지 않았던가. ◆그러나 역대국가원수가운데 국가안보에 불가측의 손상을 입힌 것은 전·노양씨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정희정권의 율곡사업 총책임자였던 오원철전경제제2수석은 신동아1월호에서 박대통령이 추진했던 유도탄개발계획이 5·6공에 의해 차단당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의 유도탄개발계획은 10년이나 뒤처지게 됐다는 것이다. ◆오전수석에 따르면 극비의 유도탄개발계획은 72년 5월 국방과학연구소(ADD)에 개발계획단이 발족된 이후 「백곰」(K―1), 「현무」(K―2) 등이 각각 78, 82년 시험발사에 성공했으나 82년말 전정권에 의해 미사일개발팀이 사실 해체됐다는 것. 그러다가 83년10월 아웅산사건이후 다시 K―2개발계획을 재개, 85년에 다시 시험발사에 성공했으나 이후 흐지부지 됐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ADD가 미사일개발과정에서 사정거리 1백80, 탄두무게 1천파운드를 초과하지 않겠다고 미국방부관계기관에 약정했던 각서가 82년에는 국방장관에 의해 다시 체결됐고 90년 8월에는 한미 미사일각서로 격상, 양국정부 사이에 교환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이 각서에 묶여 중·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동안 북한은 사정거리 1천의 중거리 미사일 실전배치는 물론 사정거리 5천의 장거리미사일을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전정권의 미사일개발중단내지 폐기가 미국정부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는지 또는 미국정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자의적인 미소작전이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떻든 전씨는 국가안보상에 문제를 남겼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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