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통신 포함 100회선당 1개 계획/“프라이버시 침해” 반대여론 빗발쳐/전화회사 장비교체 등 재정상 문제도미연방수사국(FBI)이 범죄예방과 국가안보를 무기삼아 막대한 규모의 도청망 건설을 추진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FBI는 최근 연방 관보인 「페더럴 레지스터」를 통해 범죄 다발지역의 경우, 전화 100회선당 1개의 회선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도청망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뉴욕 LA 시카고등 수백만개의 전화선이 깔려 있는 대도시에서는 수만건의 통화를 한꺼번에 도청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미국의 법 집행기관이 법원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도청이 연평균 850건으로, 전체 회선에 비교하면 17만4,000개에 한개꼴에 불과하다. 또 첩보등 국가안보를 위해 실시하고 있는 도청을 합쳐도 연 7,000건 정도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FBI계획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FBI는 기존 도청체계로는 뛰는 범죄를 막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에 새로운 체계구축이 불가피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FBI계획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인권론자들의 당연한 반대는 물론 기술·재정적으로도 적지 않은 난관에 직면해 있다.
우선 아날로그방식을 이용한 통신을 도청하기 위해 고안된 현재 시스템을 디지털방식의 통신도 도청할 수 있게 전면 교체해야 한다. 아날로그방식이 통용되던 시대에 만들어진 기존 체계로는 컴퓨터등 고성능 디지털방식을 이용한 통신을 감시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빌 클린턴 미행정부는 이를 위해 전화회사들이 디지털방식의 도청이 가능하도록 장비를 교환케 하는 「디지털 통신법(DTA)」을 지난해 통과시키는 등 사전 정지작업을 벌였었다. 당시 미행정부는 전화회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자 5억달러의 정부지원금을 약속한 바 있다.
그렇지만 전화회사들은 FBI가 요구하는 수준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5억달러의 지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게다가 정부약속과는 달리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정부 지원금에 난색을 보이고 있어 5억달러도 보장할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정부지원을 제대로 받지 않은채 장비만 바꾸었다가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화회사의 이용자인 일반 국민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FBI가 그토록 방대한 도청망을 어디에 사용할 지 의문』이라며 『FBI는 먼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과 의도를 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리처드 닉슨이 임기중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할 만큼 불법 도청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일반 국민들도 FBI의 계획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FBI가 범죄율이 낮은 시골에서조차 도청망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악용, 국민을 옭아매려는 음모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사태가 불리하게 흐르자 FBI는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은 상태이며 단지 관련 업계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단계』라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FBI가 범죄예방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먹이며 철저한 도청망 구축을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뉴욕=이종수특파원>뉴욕=이종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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