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두려운 스승… 초라한 인간은 겸손하게 안겨야”『왜 산을 오르고, 왜 극지 탐험을 하는가』 3대 극점 7대륙 최고봉을 모두 밟은 허영호씨에게도 이 물음은 영원한 화두로 남는다.
『산을 오르다 보면 내가 왜 이 짓을 하는가라는 회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든다. 너무 힘들때는 중도에 그만두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다시 정상을 향하게 된다』
수천 높이의 설산을 오르고 지구의 끝, 극지를 향해 걷는 것은 그에게 어떤 숙명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빈슨 매시프 등정을 마치고 패트리어트 힐로 귀환한 그에게 『이제 더이상 오를 곳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던져지자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직도 올라야 할 곳은 너무나 많다』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외경스러운 자연이 존재하는 한 그의 장정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방심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히말라야의 설산. 예측할 수 없는 눈사태의 공포와 숨쉬기조차 불가능하게 만드는 희박한 산소, 한 줄기 로프에 생명을 걸고 며칠씩 비박(노숙)을 해야 오를 수 있는 설벽들. 그 숱한 어려움속에서도 그는 세계의 지붕이자 3대 극지중 한 곳인 에베레스트(해발 8,848) 정상에 두 차례나 올랐다. 그것도 87년에는 사상 3번째의 동계등정이었고 93년에는 최초의 남북쪽 루트 횡단기록을 세웠다.
히말라야는 그에게 자연의 외경스러움을 가르쳐준 두려운 스승이었다. 그는 첫 히말라야 원정이었던 82년 마칼루(8,481)등정때 훈련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원정대원 대부분이 고소증에 걸려 베이스 캠프에 머무를때 당시 무명의 산악인이었던 그는 자원해서 제1캠프로 짐 옮기는 일을 맡았다. 그다음에는 제2캠프, 그다음에는 제3캠프, 이런 식으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정상공격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마칼루 원정을 떠나기전 매일 15씩 뛰며 고소적응 훈련을 쌓아두었던 그였기에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자연은 결코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를 주지않는다는 소중한 교훈이었다.
마칼루 등정에 이어 83년 마나슬루(8,156)를 무산소 단독 등정한 그는 85년 로체샬(8,400)을 등반하면서 후퇴할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정상을 바로 100앞에 두고 돌아선 것이다. 만용을 부리면 어떻게든 정상까지는 오를 수 있겠지만 하산은 자신할 수 없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한 명의 인간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가 돌아선다 해도 산은 도망치지 않는다. 그러나 엄청난 눈보라 속에서 하산도중 생명을 잃는다면 정상을 등정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로체샬 등반을 다녀온 뒤 그는 정상을 오르는 일이 명예나 돈을 거머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일 그 자체며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보라 강풍 속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수천의 얼음길을 몇 달씩 걷고 또 걸어야 하는 극지탐험. 그는 90년과 91년 잇달아 북극점 도보횡단에 나섰다가 두번 모두 실패의 쓴 맛을 봐야 했다. 첫번째는 거대한 유빙(바다위에 떠다니는 얼음덩어리)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다 북극의 봄이 닥쳐 출발 68일만에 북위 88도에서 중도포기해야 했다. 두번째는 동행한 대원이 텐트안에서 뜨거운 물이 담긴 코펠을 엎지르는 바람에 화상을 입고 출발 38일만에 후송됐다. 한 번은 거대한 자연의 무서움에 치를 떨었고 또 한 번은 사소한 실수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95년 3번째의 도전 끝에 북극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5년간에 걸친 세계일주를 준비하고 있다. 빈슨 매시프를 오르기 전부터 그를 사로잡고 있던 구상이었다. 각 대륙의 최고봉이나 8,000이상 자이언트봉을 등정하고 도보로 극점까지 다다르는 지금까지의 탐험은 일정한 점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일단 정상을 오르고 극지에 다다르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식이었다.
그가 새롭게 시도하려는 세계일주 탐험은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간목표로 삼고 있다. 자동차로 지구를 일주하면서 각 대륙의 오지와 극지, 산악지대와 열대우림 지대를 모두 섭렵하는 것이다. 사막이 나타나면 사막을 횡단하고 고봉이 보이면 고봉을 넘는 식이다.
그는 이번 탐험 중에 아직 아무도 해내지 못한 새로운 기록에도 도전하려 한다. 무보급 남극대륙 횡단이 그것이다. 아무런 지원없이 3,000에 이르는 남극대륙을 건너는 것이다. 그가 아니면 쉽게 떠올릴 수 없는 탐험계획이다. 그의 탐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박정태기자>박정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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