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그 누구도 상상못했던 엄청난 결단임에 틀림없다. 혁명으로 집권했거나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이 아닌 그가 전직대통령 두사람을 한꺼번에 감옥에 가두고 잘못된 역사를 법으로 단죄하겠다고 나선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고는 내리기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역사청산에는 찬성하면서도 결단을 내린 대통령에게 박수치는 것에는 인색한 기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이 남의 과거를 단죄하면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비판과 질문은 일체 거부하고, 국민앞에 허심탄회하게 이해와 협조를 구하지 않고, 장막뒤의 혁명가처럼 긴급명령을 발동한다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연두 기자회견을 생략하고 담화만 발표할 것이라고 하는데,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을 안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시대에는 기자들의 질문을 미리 받아 답변을 준비하고, 불리한 질문은 아예 빼도록 압력을 가하여 회견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런 사정을 짐작하면서도 온국민이 대통령의 연두 회견에 큰 관심을 갖곤 했다.
신년 회견을 안하려는 이유는 역사 청산, 대선자금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이 쏟아질 것이 뻔한데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국민은 그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대통령의 솔직한 설명을 듣고 마음을 정리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질문받기 부담스러우니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고 끝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다. 그 결정은 대통령이 국민앞에 나서서 대화하기를 꺼린다는 인상을 더욱 깊게 한다. 김대통령은 말솜씨 없기로 유명한 분이니 민감한 사안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기자회견을 할 경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라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금 그런 계산을 해야 할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없단 말인가.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국내에서는 작년 8월, 해외에서는 10월 하와이 방문이후 중단된 상태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가장 질문하고 싶은 사안이 많은 시기에 대통령은 질문을 피하고 있다. 그에게 중대고비가 될 총선을 위해서라도 그는 연두 기자회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석연치 않은 감정을 풀어야 할텐데, 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고독한 결단을 내렸다는 대통령은 역사청산을 지지하고, 그를 도우려는 국민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한채 지금도 고독하다. 그가 계속 고독하면 역사청산에 지장이 올 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언제나 국민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편집위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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