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30m 폭풍설 “앞이 안 보인다”/막히는 숨… 입벌린 크레바스 뚫고 한발 또 한발등반 첫 날인 12월7일(이하 현지시간), 원정대 일행은 제1캠프도 설치하지 못한 채 베이스 캠프로 돌아와야 했다. 심한 눈보라와 화이트 아웃(White―Out)현상으로 제1캠프 지역을 찾지못한 것이다.
등반 루트를 따라 간간히 표지기가 설치돼 있지만 시야가 너무 좋지 않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화이트 아웃이 심할 때면 바로 눈앞의 대원도 분간하기 힘들 지경인데 50∼60㎝ 높이의 표지기를 찾는건 무리다. 가느다란 대나무에 빨간 색과 파란 색 리본을 달아놓은 표지기는 등정루트를 알려주는 이정표 구실을 한다. 또 크레바스 지대 근처에는 여러개의 표지기가 꽂혀 있어 위험 표시 역할도 한다.
해발 2,600m 지점에 일단 텐트 한 동을 설치한 뒤 짐을 옮겨놓고 침낭만 챙겨 베이스 캠프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첫 날 등반치고는 너무 싱겁게 끝난 셈이다. 하지만 눈보라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 보다는 내일 등반을 서두르는 편이 낫다고 원정대는 생각했다. 물러설 줄 아는 판단력도 필요한 것이다. 허영호씨가 3대 극점 7대륙 최고봉을 등정할 수 있었던 데는 이같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행동이 중요한 강점으로 작용했다.
히말라야에서는 현지 등산안내인인 셰르파와 함께 등정하지만 남극 대륙에서는 해가 떠있는 위치로 동서남북을 알아내는 방향판과 대나무 표지기만으로 등반루트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초속 30m가 넘는 폭풍설 속에서는 해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표지기도 보이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12월8일). 날씨가 무척 좋다. 기온도 영하 13도로 등반에는 적당한 날씨다. 바람도 거의 없고 시야도 좋아 하오 1시10분께 어제 설치한 텐트에 도착했다. 텐트를 걷어낸뒤 크레바스를 두 개 건너니 제1캠프 장소임을 알려주는 깃발이 보였다. 해발 2,800m지점이다. 텐트안에서 알파미와 대구 매운탕, 마늘장아찌, 오징어 젓갈, 고추장등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이번 빈슨 매시프 등정기간중에는 먹을 것이 비교적 풍족한 편이다. 우선 등정 기간이 짧고 2년전 패트리어트 힐에 음식을 남겨놓고 간 것을 찾았기 때문이다. 2년전 남극점 횡단후 빈슨 매시프 등반을 위해 준비했던 식량을 얼음속에 묻어두었는데 이번에 도로 찾은 것이다.
12월9일. 다시 화이트 아웃이 심하고 눈도 많이 내려 시야가 좁아졌다. 하지만 제2캠프까지는 계속 전진을 해야 한다. 캐나다, 일본에서 온 등반대를 만나 길을 물어보았지만 모른다는 대답 뿐이었다. 표지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2번이나 쉬면서 보온병에 담아온 커피를 마시고 경사진 설벽을 오르니 해발 3,100m지점. 제2캠프를 설치할 수 있는 막영지다. 텐트를 2동 설치하자 곧이어 독일등반대가 올라왔다.
12월10일. 새벽부터 기온이 뚝 떨어져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해발 3,950m지점인 제3캠프까지는 급설벽과 크레바스가 계속 이어져 있는 곳이다. 한번 발을 헛디디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나락으로 추락한다. 원정대원들끼리 안자일렌(설상등반때 서로 로프를 묶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했다. 하오 2시10분께 해발 3,950m지점에 도착했다. 하지만 막영지를 100m정도 지나친 다음 텐트를 설치했다. 전날 새벽 외국등반대들이 떠드는 소리에 잠을 설쳤기 때문에 이번에는 일부러 멀찌감치 떨어진 것이다.
텐트에 들어온 대원들이 가벼운 두통을 호소했다. 남극대륙에서는 바람이 심해 히말라야보다 고산증세가 빨리 찾아온다. 강한 바람이 희박한 산소를 휘날려 호흡하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이면 정상 공격을 하는 날이다. 서울을 떠나올때 빠르면 12월10일, 늦으면 12월12일 정상을 오르기로 일정을 잡았는데 12월11일 첫번째 정상공격을 하게 된 것이다. 제2캠프에 머물고 있는 취재팀에게 무전연락을 했다. 『아침 일찍 제3캠프를 떠나 정상을 오를 예정이다. 내일 정상에서 다시 연락하겠다』<박정태기자>박정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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