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안정과 평안과 평화를/1996년 새해의 소망(사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안정과 평안과 평화를/1996년 새해의 소망(사설)

입력
1996.01.01 00:00
0 0

해가 바뀐다는 것은 평소에는 잊고 지나던 역사의 흐름소리를 귀담아 듣는 일이다.지난 해는 광복후 50년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의 허구가 무너지고 그동안 곪아온 우리 사회의 환부가 터진 해였다. 무너져야 할 모든 것이 무너지고 터져야 할 모든 것이 터졌다. 이제 그 도괴의 잔해와 파열의 상처 위에 새로 나라를 재건하고 재생시킬 1996년 새해가 밝았다.

안식 없는 우리의 건국 반세기였다. 격동과 격변으로 출렁이기만 해온 격랑의 역사는 너무 길었다. 언제까지나 흔들리고만 있을 수 없다. 그 대단원을 위해 지난 해는 유난히 요동했다. 새해는 안정의 원년이라야 한다.

민주주의를 외쳐오는 동안 자유가 목이 쉬더니 이제는 역사가 고창되고 있다. 너도 나도 자유를 부르짖어 왔듯이 너도 나도 역사를 부르짖는다. 정신없이 달려와 놓고 보니 역사가 꾸겨져 있고 얼룩져 있다. 모두가 격동의 소산물이다.

썩은 과거는 대청소 되어야 하고 꾸겨진 역사는 빳빳하게 펴져야 한다. 과거 청산이 새로운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역사를 뒤에서 당기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앞에서 끌어야 한다. 과거가 미래의 족쇄일 수 없고 미래가 과거의 인질일 수도 없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그 자체도 역사다. 자유의 이름으로 수많은 자유가 희생되었듯이 역사의 이름으로 역사가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역사 뒤흔들기여서는 안된다. 공동선의 역사를 공동선의 힘으로 당당하고 꼿꼿하게 되살려야 한다. 역사의 정립은 국가적 양심의 회복이다. 오랫동안 나라는 양심을 잃어왔다. 그 양심을 되찾는 일이 양심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럴 때 나라가 안정된다.

올 4월의 총선거는 뜻깊다. 지금이 명예혁명의 와중이라고 한다면 이 혁명의 발단은 사실상 지난 해의 6·27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이 안겨준 여당의 참패는 혁명의 신호였다. 여당은 혁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혁명 없이는 이번 총선거에서 승산이 없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결국 그 평가는 이번 총선거가 내려줄 것이다. 혁명의 당부와 성과가 총선거로 심판될 뿐 아니라 그 성패 또한 총선거로 결판나게 된다. 명예혁명이 위로부터의 혁명에 그치느냐, 아래로부터의 혁명의 호응을 받아 완수되느냐의 갈림길이다. 역사를 적는 붓대의 한표 한표다.

오는 총선거는 결과 여하에 따라 또 한바탕 나라를 흔들어 놓을는지 모른다. 어쩌면 내년 대선까지 줄곧 안정을 잃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국민은 또 불안해진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라는 파워게임의 투기장이 아니다. 국민이 파워게임의 병졸인 것도 아니다. 몇몇 정치인의 사욕이나 사감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 수 없다. 국민은 누구에게도 그런 권리를 위탁한 적이 없다. 이 또한 청산되어야 할 유물이다. 이 암투를 그치지 않는한 나라는 시끄러울 것이다.

정치위에 법치가 있고 법치위에 덕치가 있다. 나라는 법으로 다스려야 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 정치에 덕이 충만할 때 나라가 평강해진다. 투쟁과 갈등과 위화가 평정된다. 정치는 바람같은 힘이어서는 안된다. 정치의 폭력화를 경계해야 한다. 덕성이 정치의 제일가는 덕목이다. 세계사를 보아도 한 나라의 부침은 덕의 유무가 좌우해왔다. 덕이 구석구석에 펼쳐지는 나라가 흥한다. 국민은 아무 공포도 불안도 없는 정치를 원한다. 시경에 이르기를 「덕을 품으면 만사가 평안하다(회덕유녕)」고 했다.

드라마의 정치는 이제 막을 내릴 때다. 언제까지나 정치가 드라마만 연출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국민은 지금 심심하지 않다. 회전목마를 탄듯이 현기증이 난다. 드라마의 정치가 나라를 빙빙 돌리고 국민을 어질어질하게 한다. 어지러워서 못살겠고 불안해서 못살겠다. 국민을 미망에서 해방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은 안정하고 싶다.

흔들리는 배는 나아가지 않는다. 21세기의 문턱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전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새해 들면서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로 진입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의 가입도 눈앞에 두게 된다. 실속을 하면 세계화의 길도 세계중심국가가 되는 길도 멀다. 우리가 지금 청산하려는 과거들은 경제를 이만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노력의 후유증들이다. 우리가 과거를 청산하려는 것은 새로운 도약의 튼튼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라의 권위를 일신하기 위해서다. 그 발판이 흔들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새해를 맞으면서 우리 국민들의 절실한 소망은 나라의 안정과 국민의 평안과 사회의 평화다. 편안한 나라, 화목한 나라가 새해의 소원이다. 국민은 안녕하고 싶고 마음 놓고 싶다. 지난 시대의 불안정과 불안, 갈등과 대결 대신 평정과 평화, 화해와 화합의 새 시대를 맞고 싶다. 저마다 정의를 내세우지만 평화보다 더 큰 정의는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