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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1/피아노(한국의 예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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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1/피아노(한국의 예맥)

입력
1996.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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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술의 뿌리와 계보를 찾는 대기획 시리즈/연륜 짧지만 숱한 「월드스타」 배출/피아니스트 1호 김영환 최대인맥 형성/제자김원복·이애내 서울대·숙대서 가지/정애식은 김영의­이경희·윤보희 등 길러/50∼60년대 정진우·백락호쌍벽 후계양산예술은 독창적 상상력과 심미적 기술을 통해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활동이며 그 성과이다. 예술은 사람을 통해 전해지고 재창조되면서 웅장한 산맥이나 도도한 강물처럼 이어진다. 그것이 예맥이다. 그러나 반만년역사의 문화민족임을 자부하는 우리는 이에 대한 고찰과 육성에 소홀하다. 문화의 중요성과 효용성에 대한 인식도 이제 겨우 싹터가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 각 장르의 예맥을 짚어 본다.<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피아노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다.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선교사들에 의해 피아노라는 악기가 소개됐으니 100년도 못 되는 셈이다.

이처럼 역사가 짧은데도 우리는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한동일 백건우 서혜경 서주희 안영신 김정자 이미주 백혜선 김혜정 등이 현재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들이다.

이들이 하루 아침에 태어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들의 예맥을 거슬러 살펴보면 그럴듯한 계보도가 그려진다.

우리나라 피아노예맥의 처음은 김영환(1893∼1978)과 정애식(생몰연도 미상)이다. 비슷한 시기의 박경호(1899∼1979)도 있지만 그는 아쉽게도 제자를 남기지 못했다. 최초의 피아니스트로 기록되는 김영환은 숭실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동경) 음악학교와 우에노(상야)음악학교에서 공부했다. 1918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 연희전문 음악과장과 중앙중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정애식은 이화학당 대학과 1회 졸업생이다. 1923년 미국 포틀랜드 음대를 졸업한후 이화여전 초대 음악과장을 맡아 제자를 키웠다.

이들이 뿌리가 되어 나무가 자라고 가지가 뻗기 시작했다. 김원복­이애내­김영의(작고)의 「2세대 토로이카」와 백낙호­정진우의 「3세대 쌍두마차」로 이어지며 한국의 피아노음악은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피아노계의 대모로 불리는 김원복은 이애내와 함께 김영환의 애제자이다. 1946년부터 30여년동안 서울대 음대에 재직하며 두터운 서울대 인맥을 형성했다. 백락호 이성균 정은모 김하경 김정규 이명학 박지혜 등이 그의 제자이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독일에서 음악공부를 한 이애내는 숙명여대 음대를 창설했다. 제자양성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정진우 신재덕(작고) 김성복 권기택(작고) 정정식 등을 배출했다. 정애식의 계보를 잇는 김영의는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을 졸업하고 돌아와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다. 이경희(작고) 윤보희 등이 그의 제자이다. 「2세대 트로이카」와 함께 활동하며 나름대로 자취를 남긴 피아니스트로는 장보원 이호섭(작고) 김순열 노신옥 윤기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공부한 피아니스트로 우리 음악계에서 또 다른 맥을 형성하고 있다.

50∼60년대 들어 우리 피아노계에는 쟁쟁한 3세대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정진우와 백락호는 양대산맥을 형성하며 피아노음악의 발전을 주도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국 피아니스트가 된 정진우는 서울대 음대에 재직하며 화려한 계보를 만들었다. 김석 이방숙 신수정 이경숙 손국임 김정자 김용배 백혜선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미국 예일대 음대와 줄리아드음악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백락호도 고중원 서계령 이연화 김혜정 등을 키워냈다. 신재덕의 제자인 오정주 장혜원, 윤기선의 제자인 곽은수 강운경 등과 권기택 이명학 등이 60∼70년대 우리 피아노계의 기수로 활동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양악부문의 예맥을 그리는데는 어려움이 많다. 짧은 역사와 교육제도, 우리만의 특이한 사제관계 때문이다. 유럽의 경우 피아니스트 자신이 스승을 찾아나서지만 우리는 대학을 먼저 선택하고 나중에 사사할 스승을 「배정」받는 상황이다. 또 여러 스승을 사사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외국유학을 떠나 다시 배우기 때문에 누가 진정한 스승인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각 계보의 전통과 특색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음악인 스스로 자신들의 역사정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풍토가 절실하다.

◎서양음악 언제 전래됐을까/유입시기 1784년서 1884년까지 설 분분/개신교 선교사들 찬송가통한 보급 큰몫

서양음악이 처음 전해진 것은 언제일까. 매우 궁금하고 중요한 질문이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1884년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처음 전파됐다는 설과 1882년 일본 육군교도단 군악대에서 교육받은 이은돌이 들여왔다는 설, 1784년 가톨릭의 유입과 함께 전해졌다는 설등이 엇갈린다. 분명한 점은 개신교 선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찬송가를 통해 서양음악을 전했고 배재학당 이화학당 숭실학교 등 신교육기관에서 양악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양악의 한국인 선구자로는 김인식(1885∼1963) 이상준(1884∼1948) 김형준(1884∼?) 등을 들 수 있다. 김인식은 대표적 양악 교육기관이었던 조양구락부 기호학교(중앙중학의 전신) 배재학당 등에서 가르쳤다.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가곡작곡가였던 홍란파(1898∼1941)의 스승이다. 이와 함께 최초의 피아니스트 김영환, 최초의 창작오페라 「춘향전」의 작곡가 현제명(1902∼60), 작곡가 채동선(1901∼53) 박태준(1900∼86) 안익태(1906∼64), 성악가 이인선(1906∼61) 등이 초창기 양악운동의 선봉이었다.<김철훈기자>

◎이것이 최초

▲피아니스트=김영환

▲여성 학사피아니스트=정애식

▲한국인 피아노 개인보유자=김영환(1918년 5월)

▲국내콩쿠르 입상=윤기선(1932년 전국 남녀 중등학교 현상음악경연)

▲국제콩쿠르 입상=한동일(1965년 리벤트리트 콩쿠르 1등)

▲한국인 독주회=이애내(1934년)

▲국내 피아노 생산=영창피아노(1956년 조립)

▲국산 피아노 생산=삼익피아노(1960년)

▲국산피아노 수출=삼익피아노(1961년·홍콩에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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