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고 험난한 한해였다. 불안과 긴장의 한해가 저문다. 뒤돌아보면 나라의 긍지와 국민의 자신감에 손상을 입은 게 뼈아프기만 하다. 불신과 냉소가 깊어지고 번지니 분노와 허탈뿐인 듯싶다.인심은 들끓고 얼어붙고 하면서 목표 상실의 증후마저 드러내는 것 같다. 좌절의 심연에까지 닿는 듯한 무력감이 삶의 의욕을 시들게 하지 않나 걱정되기도 했다. 충격과 비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그런 날들이 겹쳤다.
썩으면 무너진다. 삼풍백화점의 붕괴에 전율했다. 이 악몽을 떨칠 겨를조차 없이 비자금의 실체와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사태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나라의 치욕을 드러낸 불행이며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발표한 10대뉴스에 꼽혔다니 그 충격의 강도와 파장은 태풍이나 지진에 비할 바 아니다. 우리네 마음의 상처를 어찌 치유할까 난감하다.
삼풍 붕괴와 비자금은 깊이 통찰하면 같은 뿌리에서 솟아난 독버섯이라 할 수 있다. 전연 별개인 듯하나 본질은 비슷하다. 그 바탕은 바로 누적된 구조적 부패다. 썩을대로 썩어 악취를 풍기며 환부를 노출시킨 것이다.
부패의 구조화는 반드시 불안을 잉태한다. 나아가서 무질서 무규범 그리고 혼란과 참변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근본에 대한 척결이 없으면 악의 결산은 흐지부지되고 만다.
우리는 그동안 화근은 놔둔채 현상만을 보고 흥분하거나 격분하는 단선적인 대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시간의 망각에 묻어두는 소극성은 용인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과거 청산을 통한 역사 바로세우기는 정치구호로 끝날 수 없는 일이다.
고통스럽게 돌아보는 이해가 마냥 부정적이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긍정의 측면은 밝다. 6·27지방선거의 실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활착에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평가와 함께 공명선거, 깨끗한 선거의 가능성을 상승케 했다.
경제도 명암이 갈렸지만 수출 1천억달러와 1인당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의 도래는 그래도 앞날의 희망지수를 높여준 성과로 꼽을 만하다.
우리는 다시 새로운 전환기에 서 있다. 진통이 없는 변화란 기대 못한다. 시야를 더욱 넓히고 과거 현재 미래를 냉철하게 통찰해야 할 것이다. 썩은 뿌리를 찍어내는 아픔이 있어 새 뿌리가 살아서 자라난다. 일시적인 울분과 비통을 물리치고 벗어남이 마땅하다.
지금은 단순히 회오에 젖거나 새해의 무사를 기원하기 보다 2000년을 내다보는 다부진 자세와 각오가 요구되는 때이기도 하다. 좌절을 이겨내면 도약의 무대가 열리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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