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실명제·소득1만불 등 값진 결실/경제정의 실마리·재계 “세대교체 태풍”/개방가속·경기 하강속 각종 악재 잠재경제계도 95년은 격동의 한해였다. 정치적 풍파속에서도 그나마 궤도를 지킨게 경제이긴 하나 정부 기업 국민등 경제주체 모두 중심을 잡기 힘든 아주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95년 한국경제 결산보고서의 말미엔 다음과 같은 감사소견을 쓸 수밖에 없다. 「질주하던 성장은 양극화에 제동이 걸렸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됐던 변화와 개혁, 개방의 바람은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되면서 경제의 투명화를 향한 또 하나의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득실에 대한 찬반양론에도 불구,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추진을 공식 결정해 「선진국클럽 회원권획득」의 집념을 나타냈다.
어쨌든 자본이동을 가로막고 독과점구조를 보호함으로써 압축성장을 이룩했던 한국경제는 이제 번영의 기회와 붕락의 위험이 공존하는, 돌이킬 수 없는 개방·경쟁체제의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뒤숭숭한 정치사회적 환경속에서 일궈낸 9.3%(추정치)의 실질성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4.7%로 마감한 물가는 커다란 개가였다. 80억달러에 달한 경상수지적자로 「세마리 토끼 포획」엔 실패했지만 인플레체질에 길들여져온 우리로서는 믿기 힘든 성적표다. 1인당 국민소득도 1만달러를 돌파, 광복 50주년을 맞아 반세기전 맨 주먹으로 시작한 경제개발의 결실을 더욱 값지게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이 경제지표는 장밋빛의 허상일 수도 있다. 모든 산업, 모든 기업, 모든 국민이 9% 고성장, 4% 저물가, 1만달러 소득의 과실을 골고루 맛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양극화」의 독소가 국민경제 곳곳에 침투, 고질병으로 자리잡고 있다.
중화학공업의 고속질주 뒤엔 경공업의 마이너스성장이 있었고 대기업들이 조단위 매출액을 기록하는 동안 1만5,000개에 육박하는 중소기업들이 부도로 쓰러졌다.
생산은 곧 소득으로 직결되고 전체근로자의 70%이상이 음지업종에서 일하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양극화는 곧 소득분배의 불균형, 결국 사회통합의 걸림돌로까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개발연대식 「지표의 신화」에 빠져 있었다.
「경제의 정치시녀화」도 극심했다.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더 많은 돈을 풀고 더 많은 세금을 깎아주기를 요구했고 정부는 이를 기꺼이 묵인했다. 근원적인 치료없는 응급처방식 선심정책에 중소기업과 서민들이 회생할리는 없고 오히려 「의존성 심화」라는 무거운 짐을 정부 스스로 자초하고 말았다.
특히 재벌엔 정치적 필요에 따라 당근(지원)과 채찍(규제)이 혼용됐다. 정치는 춤추고 경제는 맞장구를 친 형국이었다.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으로 정경유착단절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굴지의 재벌총수들이 전원 검찰에 소환됐고 일부는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수모까지 당했다.
뒤이어 전사회적 세대교체 드라이브는 재계에도 밀어닥쳐 창업세대들의 후선 퇴진을 야기시켰다. 하지만 부패의 고리를 끊어 경제정의실현의 단초를 마련하는 성과 대신 국민경제 전체가 심각한 투자심리위축과 대외신용도추락의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96년은 한국경제에 또 한차례의 시련을 예고한다. 개방은 빨라지는데 경기는 주저앉고 본격적 정치계절이 가까워지면서 잠복됐던 인플레요인은 꿈틀대고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해 반드시 혁파해야 할 고금리 고지가 고임금의 「고비용구조」는 아직도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다.
양극화속에 중소기업 연쇄도산의 끝은 또 언제쯤인지 요원하기만 하다. 이제 「경제바로잡기」의 본격적 실천이 절실한 상황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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