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치 「보수 쌍두마차」 시대로/둘다 부친 대이은 구다케시타파 출신… 대학도 게이오 동창/오자와 당무중심으로 성장·하시모토는 화려한 경력 정책통신진당 당수선거에서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간사장이 압승을 거두고 당의 얼굴로 등장하면서 리더십 부재의 일본정치에 새로운 바람이 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당내외의 기대를 한몸에 모으며 당선된 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총재와 함께 일본정치에 「하시모토의 자민당」대 「오자와의 신진당」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여야당에 각각 포진한 이같은 구도는 정계뿐 아니라 일반국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민당 시절 구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파의 핵심으로서 라이벌 관계였던 이들은 이제 여야당의 대표주자로 맞서 제2의 경쟁을 벌이게 됐다. 두 사람은 모두 게이오(경응)대 출신인데다 부친의 대를 이어받은 2세 의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콧대가 높아 때로는 주위에 거부감을 주는 인물이라는 점도 같다.
묘하게도 과거 한번씩 총리가 될 기회가 있었다는 점까지 닮았다. 오자와는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의 뒤를 잇는 총리선거때 자민당의 실세였던 가네마루 신(금환신)부총재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았으나 이를 고사했으며 하시모토는 우노 소스케(우야종우)총리의 후임으로 유력시됐으나 「여자문제」때문에 좌절당했다. 하지만 하시모토가 총리가 되지 못한 진짜 이유는 오자와의 견제때문이었다. 당시 정계에서는 이를 「일룡(오자와와 하시모토 이름의 일부)전쟁」이라 일컬었다.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도 많다. 오자와가 눌변인데 반해 하시모토는 달변이다. 오자와는 당무를 중심으로 성장한 인물로 각료직은 자치성장관밖에 거치지 않았다. 반면 하시모토는 당무보다는 정책통으로 후생성 운수성 대장성 통산성장관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있다.
정치수법도 다르다. 직선적인 오자와는 위에서 명령하는 「톱 다운」형이다. 따라서 독단 전횡 비밀주의 성급함이 두드러져 「포악한 상전」의 이미지가 강하다. 반대로 하시모토는 아래의 의견에 귀기울이는「보텀 업」형. 『당총재로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당기구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관료보다 정치인을 더 활용하는 스타일의 오자와에 비해 하시모토는 관료를 중시, 그들의 움직임을 타고 정치를 하는 타입인 것도 다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 모두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이려는 보수우익의 대표 인물이란 점이다. 일본정치가 이들의 주도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보수성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이 많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도쿄=이재무 특파원>도쿄=이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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