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입법권을 가졌다고 해서 제멋대로 하다가 제동이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식적으로 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저질러 놓고도 태연하니 기가 차지 않을 수 없다. 지난 7월 여야합의로 개정통과시킨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은 대표적인 경우로 꼽아야 할 것이다.국회의원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헌법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언론에서 여러 번 지적했는데도 들은척 만척 외면하고 말았다. 편차가 심지어는 5·8대 1까지 벌어지는 곳도 있었다. 일본은 2대 1, 미국은 3대 1, 영국은 3·3대 1이니 선진국 사례를 참고하라는 경고까지 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엄청난 편차를 인정하고 말았다. 현역 의원 우선주의로 선거구를 획정한 결과였다.
특히 충북 보은·영동 선거구의 경우 옥천군을 사이에 두고 분리돼 있는데도 하나의 선거구로 합친 것은 게리맨더링 중에서도 최악의 작품이었다. 그처럼 몰상식한 선거구 조정이 도대체 어떻게 여야합의로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단 말인가.
정말 해도 너무했다. 그처럼 양심과 양식을 버린 행위를 저질러 놓고도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27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이 바로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 헌재는 이날 결정선고에서 현행 선거구의 인구편차는 위헌이라면서 인구비율이 4대 1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다.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구는 여촌야도라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 유산이다. 도시에 약하고 농촌에 강한 여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제를 만들다보니 편차가 너무 심한 기형이 되고 만 것이다. 언젠가는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현역 의원 위주로 조금씩 부분적으로만 손질되어 왔을 뿐이다.
사실 선거구 획정을 이해당사자인 의원들이 직접 맡는다는 것부터가 공정성을 잃은 것이다. 영국에서처럼 실권을 가진 제3의 기구를 만들어 그 곳에서 담당해야 객관성이 보장되고 게리맨더링을 방지할 수 있다. 이번에도 만일 국회가 아닌 제3의 기구에서 만들었더라면 헌법재판소로부터 이런 수치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합선거법에 선거구획정위원회를 국회에 두기로 되어 있지만 실권이 없어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제 헌재의 위헌판결이 난 이상 여야는 서둘러 선거구 획정작업을 다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리와 당략에 너무 집착하면 이제는 여론의 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헌재가 좀더 과감하게 편차의 한계를 2대 1이나 3대 1로 하지 못하고 4대 1로 정한 것이 불만스럽고 언젠가는 또 고쳐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또 내년 총선 일정으로 보아 결정선고가 좀더 일찍 나왔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내년 1월 임시 국회에서는 후회 없는 작품이 나오도록 각 당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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