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껍질 벗고 저항의 날개 펼쳐/「촛불」등 서정적노래 출발 85년기점 변혁대열에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우리 가요의 행로는 순탄치 못했다. 경직되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 가요는 「사랑」이나 「이별」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음악인이 좌절해 무대를 떠나기도 했지만 현실에 꿋꿋이 저항한 음악인도 적지 않았다. 정태춘(41) 박은옥(38)부부는 이 시기에 스스로의 모습을 바꿔온 대표적인 대중음악인일 것이다.
정태춘은 1978년 「시인의 마을」「촛불」등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고 박은옥은 「윙윙윙」「회상」으로 79년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79년 결혼했다.
<소리없이 어둠은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 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 (촛불, 1978년), <윙윙윙윙 고추잠자리 마당 위로 하나가득 날으네 윙윙윙윙 예쁜 잠자리 꼬마아가씨 머리 윙윙윙 …> (윙윙윙, 1979년) 윙윙윙윙> 소리없이>
정태춘의 당시 대표곡 「촛불」에서 보이듯이 낮고 편안한 음색, 시같이 고운 노래말을 앞세운 이 부부는 각각 젊은 층의 인기를 크게 얻었다. 이들의 서정적인 초기 노래는 아직도 대중들에게 널리 애창되고 있다. 결혼후 국악을 삽입한 음반 「우네」를 발표하며 다양한 시도를 꾀하던 이들은 한계를 느끼고 한동안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85년부터 전국을 순회하는 「얘기·노래마당」무대로 대중과 다시 만나며 노래가 가야할 방향을 찾았다. 87년에는 「버섯구름의 노래」「다시 가는 노래」등으로 모습을 바꾸다가, 89년 「송아지 송아지 누렁송아지」를 통해 저항음악인으로 스스로의 자리를 정했다.
정태춘은 자신의 초기 노래를 『도피성 낭만주의』라고 혹평한다. 『인간은 귀하고 누구의 삶이든 아름다운데 그 인간성이 무엇엔가에 짓밟히고 있다』는 생각이 그의 출발점이다. 정태춘 박은옥은 노래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변혁의 대열에 섰다.
92년 공연윤리위원회의 음반 사전심의 제도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음반「장마―종로에서」를 「불법」발표했고, 정태춘은 94년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결국 음반 사전심의 제도를 없애는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 이번 국회를 통과하게 됐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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