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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풍향계/박승평(일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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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풍향계/박승평(일요시론)

입력
1995.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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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목을 비틀어도 민주의 아침은 온다」고 외친건 YS였고, 지난날 그 말은 민주정부출범의 준엄한 예고이기도 했다. 확실히 횃대를 치며 우렁찬 울음으로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기개와 상징성이란 믿음직스럽고,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그 유래가 깊다.영어로 날씨를 뜻하는 웨더(WEATHER)와 수탉을 뜻하는 콕(COCK)의 합성어인 「웨더콕」이란 게 바로 그런 것이다. 고래로 서양 어느 마을에서건 교회와 같이 가장 높은 첨탑의 꼭대기에 달려있게 마련인 수탉모양의 바람개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뜻풀이를 하자면 바람방향을 측정하는 오늘의 풍향계인 셈이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먼저 어둠을 헤치고 밝은 아침을 맞는 상징을 수탉으로 삼은건 9세기 중엽 교황의 법령으로 정했던 게 그 연원이라고 한다. 성직자는 모름지기 수탉처럼 힘차게 사람들을 일깨워야 함을 나타내고, 수탉에게 밤의 악마를 쫓는 힘이 있다는 속설에도 근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웨더콕」에는 수탉의 모양과 함께 가문을 과시하는 고유한 문장을 자랑삼아 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현대의 영어사전에서는 자기주장이나 의견도 없이 바람에 휘날리는, 변하기 쉽고 변덕스러운 사람의 뜻으로도 쓰인다니 웨더콕은 두 얼굴을 가졌다 하겠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소위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한창이고, 그로 말미암아 가장 바쁘고 노심초사하고 있는게 우리 검찰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언제 검찰이 전직 국가원수를 두명씩이나 한꺼번에 구속하고 또다른 전직대통령의 자금출처마저 조사한 적이 있었던가. 건국이래 권력의 기상도에 따라 수시로 흔들리는 바람개비처럼 잦은 굴절의 기록도 안고 있는 우리 검찰이었던 것이다.

사실 오늘의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두달전까지만 해도 우리 검찰은 중대한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다. 어두웠던 과거심판을 역사에 맡기고자 했던 한때의 정치적 해법을 좇아 기소유예에 이어 공소권 없음결정도 불사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우리 검찰이 펴 보이고 있는 오늘의 역할과 활약상은 옛날을 잊게 할 정도로 눈부시고 기개에 차 있다고 할만하다. 오죽하면 두달에 걸친 청산수사로 수사비가 동이 날 정도에 이르렀을 것인가. 바야흐로 우리 검찰은 신명이 절로 날때인 것이다.

이럴때일수록 검찰은 변화가 잦고 경박스런 바람개비가 아니라 새벽을 여는 수탉의 기상으로 진정 거듭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 검찰의 웨더콕이 누가 뭐래도 항상 정의와 법치의 쪽으로만 향해 있고 전직대통령에 대해서도 성역을 인정치 않았던 서슬퍼런 검찰 독자의 문장을 더 높일 때인 것이다.

얼마전 방한했던 이탈리아의 사정영웅 피에트로 전직검사는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라는 부정·부패 추방운동이 가능했던건 검찰이 사법부 소속으로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물론 우리 검찰은 사법부소속이 아니라 행정부소속이고 권력의 핵심인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어제는 비껴갔던 일을 마음을 돌려 오늘은 정면에서 무소불위로 다룰 수도 있었을게다.

그리고 검찰 뿐이랴. 엄연한 사법부 소속으로 헌법해석과 헌정질서유지의 권위있는 판정기관인 헌재의 곤혹스런 흔들림마저도 최근 우리는 목격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역사 바로 세우기와 청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해도 한때나마 정직한 풍향계가 되지 못하고 가벼운 바람개비가 되었던건 뒷맛이 개운치 못한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민주의 아침을 활기차게 예고했던 그 수탉의 기상과 웨더콕 기능이 우리 사법부와 검찰의 변함없는 상징이어야겠다는 것이다.

지금 검찰의 풍향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부단히 챙겨야 할 책임은 검찰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있다.<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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