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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환·노태우씨 12·12사건 공소장<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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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환·노태우씨 12·12사건 공소장<전문>

입력
199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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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전두환은 1955년 9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1공수여단장,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제1사단장 등을 거쳐 1979년 3월부터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중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세칭 「10·26 사건」(이하 「10·26사건」이라 한다)이 발생함에 따라 10월 27일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 한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980년 4월 14일부터 7월17일까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5월 31일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근무하다가 8월 16일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8월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9월1일 취임하고, 다시 1981년 2월 25일 개정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3월 3일 취임한 후 1988년 2월 24일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 같은 노태우는 위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1955년 9월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9공수여단장, 대통령 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거쳐 「10·26 사건」 당시에는 제9사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수도경비사령관, 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1981년 7월 육군대장으로 전역한 후 정무제2장관,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등을 역임하고, 1985년 2월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및 총재로 재직하다가 1987년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년 2월 25일 취임한 후 1993년 2월 24일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로서 1995년 12월 5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계속 중에 있는 자 등인 바,「10·26사건」이후 국내정치상황은 유신헌법을 개정하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79년 11월 8일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개정을 통한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11월 21일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이 모색되는 가운데 12월 8일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되어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 군 내부에서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10·26사건」이후 발생한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치안을 유지하는데 국한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 「10·26사건」과 관련하여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된 이재전 대통령 경호실 차장의 석방, 청와대에서 발견된 금원의 처리, 부정축재자의 처리 및 재산몰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허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승화 총장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오던중 11월 중순경에 단행된 군인사에서 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정규육사 출신의 피고인 등이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자신들의 군내 입지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12월 초순경 군 일각에 피고인 전두환이 잦은 월권행위와 군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곧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승화 총장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 전두환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 피고인등은 위 전두환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 소속 장교들의 군내 입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군의 주도권 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정승화 총장이 「10·26사건」 당시 박 대통령 시해 현장 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군본부(이하 「육본」이라 한다)로 동행한 사실로 인해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 총장이 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이미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정승화 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 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12월 7일경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 한다)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 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월 12일로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 겸 합수부 수사1국장 육군중령 이학봉에게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월 8일경 육군참모총장 공관(이하 「총장공관」이라 한다)을 연행장소로 결정한 후, 12월 9일경 위 이학봉, 보안사 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 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 겸 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화 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 수도경비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 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월 12일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고인 노태우 등 소위 「하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한다)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 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육군중장 차규헌, 제20사단장 육군소장 박준병, 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 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 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 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 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 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 김진영,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 위 이학봉, 허삼수, 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 위 우경윤,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옥, 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 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 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 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홍, 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 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 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 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장 송응섭, 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 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 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 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 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 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 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 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는 사전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백운택,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장세동, 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18시경부터 19시경까지 사이에 위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 위 허화평, 권정달, 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상황을 파악, 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위 조홍은 미리 계획한대로 12월초경 계엄업무로 수고하는 수도권 주요지휘관들을 보안사령관이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 장태완, 정병주, 김진기 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12월12일 18시30분경 약속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상호불상 한정식집에 오게하여 유인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월12일 오전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현직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려면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 채 총기와 실탄을 준비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위 허삼수등에게 지시하고 이에 따라 허삼수, 우경윤, 성환옥, 최석립, 이종민 등은 같은날 18시경 합수부 수사관 7명, 경복궁 구내 주둔 수경사 제33헌병대 3개 대대병력 60여명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집결시켜 총장공관 경비병등을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권총과 엠(M)16소총으로 무장케한 다음 18시50분경 정당한 이유없이 위 부대를 인솔하고 수소를 이탈하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총장공관에 도착, 각자 분담한 임무에 따라 무장한 합수부 수사관들은 총장공관 부관실, 공관입구 헌병초소, 공관현관 등을 제압하고, 제33헌병대 병력은 퇴로를 확보하고, 19시10분경 허삼수, 우경윤이 총장공관 응접실로 들어가 정승화총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받아야 하겠으니 녹음준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하였으나, 정승화 총장이 이를 거부하면서 수행부관 육군소령 이재천에게 국방부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가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동인이 부관실에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합수부 수사관 육군소령 김대균, 육군소령 한길성, 육군상사 박원철 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난사하여 상관인 이재천과 경호장교 육군대위 김인선 등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머리와 허리 등에 총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무렵 허삼수, 우경윤은 정승화총장을 끌고 나오던 중 우경윤이 성명불상자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 부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길성이 허삼수를 도와 정승화총장의 양팔을 붙잡고, 박원철은 엠(M)16 소총 개머리판으로 응접실 대형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위협하면서 함께 끌고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19시30분경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월12일 18시20분경 위 이학봉,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재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새로운 혐의 사실이 발견되어 연행·조사하여야 하겠으니 재가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였다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재가를 해 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20시20분경 위 정동호 고명승에게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고, 정동호, 고명승 등은 그시경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제55경비대대 부대대장 육군소령 권중원 및 5분 대기조 24명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출동하여 20시40분경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그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그 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2개 제대 병력 64명을 추가로 출동시켜 그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월12일 21시30분경 위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백운택, 박희도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 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고인 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 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월12일 23시00분경 위 박희도에게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 오라고 지시하고, 위 조홍에게는 수경사 헌병단 병력을 출동시켜 수경사에 있는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위 최세창에게는 특수전사령관을 체포한 후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으로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24시00분경 위 장기오에게는 제5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2월12일 24시00분경 위 구창회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황영시는 12월13일 00시30분경 위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01시10분경 위 박희모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월13일 00시05분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 소재 제1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1, 2, 5, 6대대 병력 1,50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행주대교, 능곡, 수색을 거쳐 01시35분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한 후, 제1, 2대대 병력은 육본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등을 무력으로 제압한 후 무장을 해제시키고 안으로 진입하여 육본 건물을 점령하고, 제5, 6대대 병력은 국방부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국방부 청사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제5대대 제15지역대 소속 성명불상 장병들이 국방부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 육군병장 정선엽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고, 02시40분경 국방부장관실에 난입하여 합동참모의장 육군대장 김종환등 장성 8명의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국방부 청사를 수색한 끝에 03시50분경 지하1층 상황실 입구에서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고 보안사로 연행하고,

◇위 최세창은 12월12일 23시30분경 특수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한다)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24시00분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 육군대위 김홍열, 육군대위 나영조, 육군중사 신현수,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과 함께 안으로 진입하여 위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이 이들에게 엠(M)16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쇠골절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최세창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월13일 02시00분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 병력 60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천호대교, 강북로, 한남동을 거쳐 03시00분경 경복궁으로 진주하고,

◇위 장기오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5공수여단 제23대대장 육군중령 정낙준과 제26대대장 육군중령 장용주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정낙준, 장용주 등은 12월13일 02시00분경 인천 북구 부평동 소재 제5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23대대 및 제26대대 병력 4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경인고속도로, 제1한강교를 거쳐 03시25분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하였으나 국방부와 육본이 제1공수여단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어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진주하고,

◇위 조홍은 12월12일 23시30분경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에게 당시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수경사에 모여 있던 위 장태완, 윤성민, 육본 작전참모부장 육군소장 하소곤, 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문홍구 등 육본측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신윤희는 12월13일 03시00분경 헌병단 소속 육군대위 임대식, 윤태이 등으로 하여금 헌병 55명을 지휘하여 사령부 외곽과 1, 2층 복도를 포위케 한 후, 03시40분경 육군대위 한영수, 육군대위 이재우, 헌병단 정보과장 군무원 최순호, 성명불상 헌병 5명과 함께 사령관실로 진입하여 장태완, 윤성민, 하소곤, 문홍구 등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한영수가 엠(M)16 소총 1발을 발사하여 상관인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좌흉부관통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이필섭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구창회의 지시를 받아 12월13일 02시20분경 경기 고양군 벽제읍 소재 제29연대 연병장에서 제29, 30연대 병력 1,30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구파발, 홍은동을 거쳐 03시30분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이상규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16전차대대 대대장 육군중령 김호영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김호영은 12월13일 02시30분경 경기 파주군 금촌읍 아동리 소재 제2기갑여단 연병장에서 제16전차대대 전차 35대와 병력 1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통일로, 구파발, 서대문등을 거쳐 03시25분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박희모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위 송응섭에게 병력 출동을 지시하고, 송응섭은 12월13일 03시30분경 고양시 신도읍 삼송리에 집결한 제90연대 병력 1,10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홍은동, 세검정을 거쳐 06시20분경 고려대학교 운동장으로 진주함으로써 계엄지역에서 각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각 진퇴시키고, 정당한 이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각 수소를 이탈하고,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이재천, 김인선, 정병주,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각 미수에 그치고, 초병인 정선엽을 살해함과 동시에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 같은 노태우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12·12 및 5·18 수사일지

▲11월 24일:김영삼 대통령 5·18특별법 제정발표.

▲11월 30일:헌재 헌법소원결정 연기. 검찰, 서울지검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발족.

▲12월 2일:전씨 대국민성명발표후 출두거부, 경남 합천행.

▲12월 3일:전씨 연행 안양교도소 수감.

▲12월 4일:조홍 당시수경사헌병단장, 노재현 국방장관 소환을 시작으로 관련자 본격소환조사 시작.

▲12월 5일:유학성 국방부군수차관보등 소환조사

▲12월 6일:박준병 20사단장, 고명승 대통령경호실상황실장 소환조사.

▲12월 7일:정승화 계엄사령관, 노충현 20사단참모장, 배상기 국방장관부관, 한길성 보안사서빙고분실장등 5명조사.

▲12월 8일:수사본부, 최전대통령에게 출석요구서전달.

▲12월 9일:허삼수 보안사인사처장, 박종규 3공수15대대장등 소환조사.

▲12월 10일:허화평 보안사비서실장, 권정달 보안사정보처장, 황영시 1군단장, 정도 영보안사 보안처장등 7명소환조사.

▲12월 11일:이학봉 보안사대공2과장겸 합수부수사1국장, 윤성민 육참차장, 주영복 국방장관, 이희성 계엄사령관, 정동호 대통령경호실장직무대리, 김윤호 광주보병학교장(참고인)등 소환조사.

▲12월 12일:최규하씨 1차방문조사무산. 장세동 30경비단장등 소환조사.

▲12월 14일:최세창 당시3공수여단장, 우경윤 육본범죄수사단장 조사.

▲12월 15일:헌재, 5·18헌법소원사건 사건종료결정하고 소수의견으로 성공한 내란도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제시.

▲12월 16일:신현확 전국무총리, 김진기 육본헌병감 소환조사. 최규하씨 2차방문조사무산. 최씨 대국민성명발표.

▲12월 17일:장태완 수경사령관, 문홍구 합참대간첩본부장소환조사.

▲12월 18일:안병호 9사단작전참모, 최광수 최전대통령비서실장등 소환조사.

▲12월 19일:국회 5·18특별법제정. 수사본부 안현태 전청와대경호실장, 하소곤 육본작전참모부장 소환조사.

▲12월 20일:윤자중 전공군참모총장, 김종곤 전해군참모총장등 소환조사

▲12월 21일:전씨 경찰병원으로 이송. 전씨 구속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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