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인류학자인 마빈 해리스에 의하면 원시인은 하루의 편안한 잠자리와 먹을 거리 그리고 의복을 마련하기 위하여 하루 평균 2시간 정도의 노동을 하면 되었다고 한다. 그 원시인들은 나머지 시간동안 내일을 위한 휴식을 취하거나 하면 그만이었다. 아마도 그 무수히 많았을 나머지 시간들에 의해 축적된 부와 기술이 지금의 현대인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현대인들은 어떤가. 필자는 대도시의 교통지옥을 뚫고 무사히 출근하게 되는 오전이면 늘 마빈 해리스의 그 말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에 빠진다. 현대인인 나는 최소한 따뜻한 잠자리와, 비록 아침은 포기하더라도 여유로운 점심과 저녁, 그리고 멋진 옷을 가지기 위해 적어도 하루에 10시간 이상은 남들처럼 뛰어다녀야 한다. 어쩌면 그 먼 옛날의 원시인이 나보다 훨씬 질 높고 세련되지는 못했더라도 여유로운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미 녹초가 되어 있는 아침이 되면 마치 하루의 노동을 마친 원시인처럼 편안히 어디든지 늘어져 한숨 자고 싶은 심정이 든다. 어디 나같은 원시인이 없나 하고 사무실을 한 번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이 빌딩의 도시에 원시인이 있을리 만무하다. 원시인이 되고 싶은 현대인들은 아마도 많을 것이다. 그들은 태초의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을 마음 속 어딘가에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대개 시간과 부의 함수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많은 시간적 여유와 풍부한 부를 동시에 추구하지만 이 둘은 대부분 반비례관계에 놓이게 마련이다. 이것이 현대적인 삶의 법칙인가 보다. 때로 우리는 파격을 꿈꾸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그 함수의 절대적이다시피 한 논리를 증명하는 몸짓에 불과할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그 삶의 함수 안에서 보란듯이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다. 원시적인 자유로움이 없어지고 난 자리에서 현대인들은 부와 여유의 함수놀음을 즐기고 있다.<장현동 문학평론가>장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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