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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첫 공판­전대통령 법정서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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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 첫 공판­전대통령 법정서던 날

입력
1995.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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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될 준엄한 법의 일성/“피고인 노태우”/긴장속 호명에 들릴듯 말듯 “예”/눈길 떨군채 초췌한 모습 입정/“뇌물 아니다” 강변땐 표정 상기『95고합 1228호 및 병합 1237호, 병합 1238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등 사건, 피고인 노태우』

18일 상오 10시1분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 김영일 부장판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부끄러운, 그러나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될 역사의 심판은 이렇게 시작됐다.

법정에는 순간 숨막힐듯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흰 고무신이 보이는 것과 동시에 흰머리가 드문드문한 노씨의 모습이 구속수감 한달 이틀만에 온국민앞에 나타났다. 수인번호 「1432」가 노란 베로 만든 명찰에 선명히 드러났다.

국가의 최고경영자에서 한낱 형사피고인으로 전락한 노전대통령은 솜옷 소매를 팔짱 낀채 고개를 숙이고 입정했다. 재판부의 호명과 검찰의 인정신문에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예』를 반복, 주의를 받아야 했다. 지난달 16일 구속되는 자리에서까지 역사와 나라를 운위하며 애써 지키려했던 「권위」는 초췌한 얼굴과 힘없는 목소리, 늘어뜨린 어깨 어디서도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아들 재헌씨가 중앙에 자리잡은 방청석 쪽으로는 차마 눈길을 던지지 못했다.

이어 전직대통령의 경호실장과 수석비서관, 국회의원등과 거물급 기업인들이 차례로 노씨의 곁에 섰다. 한때의 「권부」가 피고인석을 꽉 메운 법정은 6공의 청와대이자 전경련이었다.

공판은 피고인들의 모두진술이 없이 재판부의 인정신문에 이어 뇌물혐의를 밝히려는 검찰의 직접신문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노씨의 답변은 시종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작았으나 자신이 받은 돈이 뇌물이 아님을 강변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시간30여분간의 상오 신문이 끝나고 지하구치감식당에서 혼자 점심을 든 후 하오에 입정한 노씨의 모습은 더 왜소해 보였다. 그룹총수들이 재판부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대목에서는 풀이 죽은듯 멍한 상념에 빠져 재판부 뒤편 벽면에 새겨진 법원마크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역사적이란 수식어답게 첫 공판의 분위기는 엄숙했고 진지했다. 그러나 법정의 공방은 단한가지 『검은 돈을 왜 주고 받았는가』였다.

단죄의 첫날은 하오 6시25분 막을 내렸다. 재판부와 검찰, 변호인단, 방청객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으나 모두의 표정은 바깥의 어둠처럼 무거워 보였다.<이진동·박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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