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지하 만인지상. 국무총리의 자리를 가리킬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위로는 오로지 왕이나 대통령 한 사람이 있을 뿐이고 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 밑에 있다는 뜻이다. 그만큼 재상의 자리는 높고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사실 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왕보다 더 유명한 명재상들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 황희정승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판서등 다른 벼슬도 많이 했지만 영의정만 18년간 지내면서 농사개량 예법개정 천첩소생의 천역면제등 업적을 남겨 세종의 가장 신임받는 재상으로 명성을 날리고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대통령 중심제의 권력구조에서 우리는 그런 명재상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기껏해야 수명은 대개 1년이 고작이니 업적이니 뭐니 쌓을 틈도 없다. 정권이 흔들릴 정도의 큰 사고 사건이 터지면 그 책임을 묻는 형식으로 쫓겨나게 마련이다. 대통령을 위한 희생양이요 소모품이라는 생각이 들 따름이다. ◆그러다가 보니 총리 자리란 어느덧 대통령 밑에서 쪽도 쓰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헌법에 규정된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연설문이나 대독하고 행사에 얼굴이나 내미는 의전용 치레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한때 이회창총리가 자기 밥그릇을 챙기겠다고 호기있게 나섰지만 결국 해임되고 말았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여론은 총리가 바뀔 때마다 대서특필로 마치 세상이 바뀌기라도 하는양 떠들썩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실권도 없는 총리가 바뀌었다고 달라질게 아무것도 없는데 기대만 잔뜩 부풀리게 한다. 언론이 잘못 유도하는건지 아니면 역대 총리들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소신없이 무사안일에 주저앉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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