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저물어 가고있다. 한해의 마지막 길목에 선 사람들은 썰렁하고 스산하며 무엇인가를 잃은 듯한 공허감에 사로잡혀있다. 유난히 추울 것이라고 예보된 겨울날씨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한해의 삶을 반추하면서 회한에 잠기게되는 올해의 세모가 유독 각별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너무나 끔찍했고 경악스러웠던 사고와 사건들이 국민들을 불안과 긴장, 충격과 분노, 실의와 혐오에 시달리게 해 삶자체가 피곤하고 짜증스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건국이래 최악이었던 삼풍백화점의 붕괴참변이 죄없는 수많은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열차 충돌사고, 비행기 추락사고, 연안여객선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참변, 충주호의 유람선화재, 서울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등 정신없이 사고가 이어졌던 지난해를 무색케했다. 삼풍백화점 붕괴참변은 나라체면을 「사고공화국」으로 추락시켰다. 고층아파트와 백화점과 극장등 다중이용 시설물에 확산된 불안심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있다.
연말에 육상에서 또 대참변이 터진다고 했다는 어느 점쟁이의 예언이 송년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말도 있다. 사람들이 돌발사고에 가위가 눌려있다는 반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삼풍붕괴의 폐허속에서도 11일·13일·15일씩이나 버티고 살아난 최명석군·유지환양·박승현양등 세 젊은이들이 보여준 강인한 생명력과 서민정신은 그때 절망감에 빠져있던 국민들을 크게 격려했다. 비극적인 올해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인간승리가 있었다는 것은 유일한 위안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라를 이끈다는 정치인들이 한 일은 대형사고 못지않게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그래서 정치에 대한 실망과 혐오와 무관심이 그 어느해보다 컸다.
북한에 15만톤의 쌀을 주고서도 뺨만 맞은 꼴이 된 대북외교행태는 정말 국민들을 속상하게 했다. 30억달러를 부담해야할 북한경수로 건설협상에서도 재주는 미국사람들이 부리고 북한은 배짱부리며 이득을 취하고 있건만 우리는 팔짱만끼고 봉이 돼버린 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 우성호선원들의 귀환소식은 여전히 감감하다. 쌀주고 경수로 만들어준다는데도 북한은 전쟁준비에만 골몰해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해서 주식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중소기업은 하루에도 40∼50개씩 도산하고 있다. 이게 어디 문민정부에 기대했던 정치였던가.
대통령으로 뽑아줬던 노태우 전대통령은 정치에는 그렇게도 무능했으면서 재벌들에게 공갈이나 쳐 5천억원이상을 비자금으로 끌어모으고 2천8백억원이상을 사리를 위해 꼬불쳤다. 이 보다 더 국민들을 분통터지게 하는 일이 또 있겠는가. 철창에 갇힌 노씨가 밉기만하다.
노씨사건은 대통령 자리에 대한 불신과 격하의 심사를 드높여 놓았다. 돈에 대한 가치혼란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어 놓았다는 것도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건국이래 최대 최악의 부정축재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그처럼 탐욕스러웠던 대통령에게 기십기백억원씩을 뜯기고서도 끄덕없는 재벌기업들의 생명력도 불가사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정경유착밑에서도 경제는 9.3%나 신장되고 국민 1인당 GNP가 1만달러를 돌파하게됐다고하니 우리국민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기적의 민족임이 분명하다.
6·27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참패와 DJ의 명분약한 정치복귀가 몰고온 정치권의 「제로섬」투쟁은 대형사고 못지않게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국민 누구도 마다않을 「역사바로세우기」의 명예혁명을 제창한 김영삼 대통령의 통치의지는 무엇때문에 국민들을 시큰둥하게 만들어 놓았는가. 선뜻 동참하기를 꺼리며 냉소만 짓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이 예측할 수 없는 인물로 낙인찍혀 국민들로부터 신뢰심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깜짝쇼식의 통치행태가 빚은 결과다.
어찌됐든 지구는 돈다. 그래서 해는 바뀐다. 참담하고 낭패스러운 한해는 머지않아 가버리고 새해의 맑은해는 어김없이 떠오를것이다. 새해에는 사고도 줄고 예측가능한 정치가 펼쳐져 온국민들의 삶이 희망적이었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만도 못한 「돼지의 해」가 빨리 가버리기를 바라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논설위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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