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후 30여년 골수 「서울대맨」/80년엔 신군부에 고초 겪기도/부친은 6·25때 납북… 8남매 편모슬하서 자라시위현장에서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서울대의 「야성 총장」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할 재상이 됐다.
이수성(56) 국무총리내정자는 소신과 양심으로 사도의 길을 걸어온 「행동하는 교수」로 통한다. 80년 「서울의 봄」, 88년 서울대 총장실 난입사건등을 거쳐 서울대의 첫 직선학장(법대), 서울대 총장에 이르기까지 암울했던 80년대 한국의 대학이 겪어야 했던 갈등과 명암을 낱낱이 경험한 산증인이다.
특히 80년 「서울의 봄」때 서울대 학생처장이었던 이총리내정자는 시위현장에서 학생들을 두둔했다는 이유로 신군부로부터 고초를 당했다. 서울역 시위때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며 학생들을 설득했고,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동생인 영남대교수 수인씨와 함께 해직의 압력을 받으며 5공 참여의 회유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지난 3월에는 서울대 총장으로서는 15년만에 처음으로 총학생회 출범식에 참석했고, 4월에는 11년만에 처음으로 「서울대 4월혁명기념탑」을 참배해 학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총리내정자는 39년 경북 칠곡태생으로 서울고를 거쳐 6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형사법을 전공했다. 67년 전임강사 발령을 받은 이래 서울대를 떠나본 적이 없다.
부친은 이총리내정자가 중학생이었던 6·25때 납북돼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있는 이충영 변호사. 이변호사는 일제때 법조계의 신화적 인물로 창씨개명을 거부한끝에 판사직을 내던졌을 정도로 기개가 높았다. 이변호사는 해방직후 어린 이총리내정자를 김구 서재필 선생등에게 데리고가 인사를 시켰다. 어린 그에게 기개와 소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 위한 산교육이었다.
이총리내정자는『선친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어릴때부터 늘 「거짓말 하지 말라. 한점 부끄럼없이 떳떳하게 살아라. 돈에 구애받지 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타일러 주셨다』며 부친을 존경하고 있다. 이총리내정자등 4남4녀는 부친이 납북되는 바람에 어머니 강금복(85)여사에 의해 길러졌다. 아들네명중 세명은 학자로 컸다. 밑으로 수인(54·전평민당의원·영남대교수) 수윤(52·한국교원대교수) 수억(49·서울방송체육국장)씨등이 있다. 특히 수인씨는 경북출신이면서도 90년 지역감정해소를 내걸고 전남 함평영광의 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이총리내정자는 부친이 납북된뒤 부친과 친분이 두터운 이호 전법무장관 김상협 전국무총리 등으로 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김용준 헌법재판소장과는 서울고 서울법대 동기동창으로 각별히 우의를 나누는 사이. 부인 김경순(56)씨는 유치원과 국민학교 동갑동창생으로 이대 영문과 출신. 슬하에 1남1녀를 두고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이 총리 내정자 약력
▲39년 3월10일 경북 칠곡 출생
▲61년 서울대법학과졸업
▲64년 서울대법학과대학원졸업
▲67년 서울대법학연구소 전임강사로 재직시작
▲80년 1월∼6월 서울대학생처장
▲86∼88년 한국형사정책학회장
▲88∼90년 서울대 첫직선법대
학장
▲95년 3월 제20대 서울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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