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정치는 러시아의 룰렛 게임과 같다』미시사주간지 타임 지난주호에 실린 「피와 탐욕의 유산」이란 제목의 기사에 나오는 말이다. 권총에 탄환을 한개만 장전해 놓고 여러사람이 돌아가며 자기 관자놀이에 총을 격발하는 룰렛 게임처럼 한국의 과거청산작업이 예측불가능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빗댄 말로 들린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노태우씨 구속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제 1막』이라고 했다. 그리스 신화로는 모든 죄악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의미이지만 어떤 일이 있을 지 모른다는 뜻으로도 쓴 표현같다.
국내에서 일어난 일을 거꾸로 외신을 통해서 알던 때가 있었다. 돌아가는 내막은 고사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제대로 알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는 얘기다.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거청산 작업에 대한 외국 언론의 보도가 그 어두웠던 시절의 「효용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일어나고 있는 사실마저 모르는 국민은 없을테니까. 그런데 이번에도 국내언론들이 외국 언론보도를 많은 지면을 할애해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외국언론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형 부정축재 단죄와 군사 쿠데타세력 처단」작업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과 객관적 해석을 국외자의 입장에서 제공해 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그 외신이 노씨 축재비리가 폭로되고 검찰의 수사가 시작됐을 때 공통적으로 보인 반응은 『한국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이었다. 「충격의 소용돌이」 「정국혼미」등의 표현도 등장하긴 했지만 주류는 역시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분출된 사건』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비자금 폭로의 주인공은 한국의 일천한 민주주의』라는 찬사였다.
외국 언론들은 이처럼 성원을 보내면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노씨 비자금에 얽힌 비리의 진상을 한점 의혹도 남지 않도록 밝혀 민주주의가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한국의 사법체계가 독립적이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그 진상이 철저히 밝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외신논조가 노씨 축재비리에 대한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수사결과가 나오고 그것이 12·12와 5·18 재수사등 「특별법 정국」으로의 급전환속에 묻혀 버린 이후 마냥 찬사가 아니라 동기와 결과에 의구심을 나타내는 쪽으로 변화를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씨 비리의 전모와 12·12, 5·18의 진상을 확실히 밝혀내 「부끄러운 과거」를 말끔히 청산하자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국민적 합의이다. 그런데 그 역사적 작업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어지럽게 진행돼서는 안될 일이다. 정치권의 여야 어디로부터라도 정략적 의도가 개입되면 「부끄러운 과거」의 「부끄러운 청산」이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잠시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확실하고 엄중한 과거청산을 이루어야만 외국 언론들도 처음과 마찬가지로 『한국은 민주정치의 정착을 앞당겼다』고 쓸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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