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지원 5중고에 신음/연말경기 “꽁꽁” 대출힘든데 빚독촉까지/납품가인하 강요에 거래선끊길까 감수도중소기업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다. 용케 살아남은 중소기업들도 날로 악화하는 경영난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 땅에서 중소기업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히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지표상으로는 경제성장률 9%이상의 호황이라고 하지만 이는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업종의 잔치일뿐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추위속에 떨고 있다. 비자금파문과 5·18정국은 더욱 중소기업의 목을 죄고 있다. 정부가 중소기업지원을 외치고 있지만 혼미한 정국과 개각 분위기속에서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신음하는 중소기업의 실태를 긴급진단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경기 안산시 초지동 반월공단 염색단지. 100여 섬유·염색업체가 들어서 있는 이곳에서 15년째 주·야간 가동을 해온 신성산업(대표 문정국)은 이달초 주간근무조만 두고 야간조는 아예 없애버렸다. 매달 14억∼15억원에 달했던 주문이 격감했기 때문이다.
구로공단에서 기계류를 생산하고 있는 T사의 남모(48)사장은 목을 조여오는 자금난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어떻게든 연말은 넘길 생각이지만 내년 1월말 95년도 2기분 부가가치세를 내고 2월에 설 상여금을 지급해야 할 생각을 하면 눈앞이 캄캄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T사 인근의 H전자. 조립라인에 배치된 생산직 47명중 38명은 아직 손놀림이 서툰 주부들이다. 『젊은 직원들을 구할 수 없어 주부들을 고용했다.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공장을 놀릴 수는 없지 않느냐』고 회사관계자는 하소연했다.
지방의 문구류 납품업체인 H사의 경리책임자는 부도위험때문에 걱정이 태산같다. 『최근 한 거래업체가 은행으로부터 대출금 상환독촉에 시달리다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 회사와 거래를 해온 6∼8개사가 연쇄 도산위기에 빠졌다』고 말했다.
최악의 위기상황에 직면한 중소기업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비자금파문에 이은 5·18정국으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연말상여금과 은행연체료등 평소보다 3∼4배의 자금이 필요한 시기지만 기대했던 연말경기마저 꽁꽁 얼어붙는 바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많은 중소기업인들은 이대로 가다간 상당수 업체가 「연말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들은 새해부터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품가 인하가 불가피하다며 납품업체에 납품가격 인하를 강요하고 있다. 업체들은 납품선이 끊어질까봐 항의도 못하고 속으로 울화를 삭이고 있다.
취업철인데도 인력은 대기업으로만 몰리고 중소기업을 찾는 젊은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외국인력을 쓰고 싶지만 경쟁이 심해 하늘의 별따기다. 생산성이 떨어지다 보니 국제경쟁력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에다 인력난 판매난 국제경쟁력 악화에 대기업압력까지 겹쳐 5중고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10월말까지 부도난 업체는 모두 1만1,416개사. 이미 지난해 한해동안의 부도업체 1만1,255개사를 넘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 상태라면 연말까지 부도업체는 1만5,000개에 육박할 전망이다.
연말을 맞아 자금수요가 크게 늘어났지만 은행으로부터 추가대출은 커녕 이미 대출받은 자금에 대한 연말정산용 연체료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따라 A기업과 거래해온 B기업, B기업과 관계있는 C기업등 업체들끼리 그동안 밀린 대금을 갚아달라는 연쇄빚독촉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 금융기관등 모두가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면서도 정작 엉뚱한 일에 한눈을 파는 사이 중소기업은 중태에 빠졌다. 중소기업의 중태는 우리 경제 전체를 소생불능의 위기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박정규 기자>박정규>
◎“경기양극화 내년 더심각 생산·수출등 늘지만 채산성은 악화”/기협,중기800개사 조사
중소기업들은 내년에도 「중공업호조―경공업불황」의 양극화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15일 조사됐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의하면 최근 중소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전국 800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내년에 생산과 내수 수출 설비투자는 올해보다 늘어나지만 자금사정 악화에 따른 금융부담 증가로 채산성은 오히려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를 100으로 잡은 기업실사지수(BSI)산출방법으로 분석된 이번 조사에서 기업들은 내년도 생산량은 111.4로 올해보다 11.4포인트 늘고 내수와 수출도 각각 111.2, 111.0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시설자금사정은 97.2, 운전자금사정은 86.3으로 올해보다 훨씬 나빠지고 이에 따른 금융비용 증가등으로 채산성이 올해의 100보다 20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80.1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채산성면에서 중화학공업업체들은 85.7로 떨어질 것으로 진단한 반면, 경공업업체들은 73.8로 무려 26포인트이상 하락할 것으로 보는등 양극화현상이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박정규 기자>박정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