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우리들의 자화상 소설로 생생히꿈많고 욕심많던 스무살 처녀시절 서울의 언저리에서 한국전쟁을 겪은 체험을 담은 자전소설.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듯 먼저 나온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어 소녀티를 갓 벗은 대학 1년생이 전란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쳤던 일들을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총상을 입은 오빠 때문에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인민위원회 일을 도왔던 그는 서울수복 후에는 반대로 향토방위대 일을 한다.
양식을 구하려고 올케와 함께 피란가고 빈 집들을 밤 중에 담 넘어 다니면서 남의 이목과 양심을 두려워했다. 다친 상처를 이기지 못하는 오빠를 보며 「오빠의 죽음이 양심의 짐이 안되는 이데올로기 따위가 왜 있어야 하느냐」고 소리도 쳤다. 오빠가 죽은 다음 날, 부란의 냄새로 가족과 정을 떼려는 사자를 묻고 돌아와 「우리는 둘러앉아, 사랑하는 가족이 숨 끊어진지 하루도 되기 전에 단지 썩을 것을 염려하여 내다 버린 인간들답게, 팥죽을 단지 쉴까봐 아귀아귀 먹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는 고작 스무살이어서 미제 껌맛에 혼을 뺏길 지경이었고, 초콜릿이 넘친다는 피엑스를 구경하고 싶었다. 간판쟁이 화가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으면서 거만도 부렸다.
이 소설이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거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란풍경, 수복후 서울 돈암시장에 개미처럼 몰려나온 장사치들의 모습, 피엑스에서 근무하던 한국인들의 행태가 실감난다.
전쟁의 비극에 익숙한 독자들도 정갈한 문장으로 차근차근 경험을 좇아가며 비극적이면서 악착같고 때로는 우스운 그때의 일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같다. 웅진출판간·6,500원<김범수 기자>김범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