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적 환상성 바탕 시공초월한 애절한 사랑 “뭉클”요즈음 유행하는 신세대의 노래를 들어보면 「다음 세상 운운…」하는, 내세의 사랑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특히 전생과 후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사랑을 다룬 작품이 많아지기도 했거니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다. 「천녀유혼」을 필두로 「진용」등의 중국영화는 원래 동양의 전통설화를 바탕으로 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마네킨」 「드라큐라」등 서양영화도 이러한 취지를 저항없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바야흐로 현실범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마 우리나라의 경우, 10년전만 해도 이러한 내용의 소설은 고전소설의 세계관을 탈피하지 못했다든가 리얼리티나 합리성이 떨어진다든가 하는등의 이유로 별로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가까운 중국대륙에서는 최근까지도 문학사·소설사등의 서술에서 이러한 유의 소설에 대해 대중의 현실인식을 왜곡하고 투쟁의욕을 마비시키는 역기능을 하는 작품으로 가차없이 비판해 왔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잣대는 요지부동의 확고한 것일까? 우리가 지금도 즐겨 읽는 「삼국지연의」는 근대(서양)소설론의 관점에서 보면 구성이 엉성하고, 인물도 산만하게 출현하는데다가, 비합리적인 내용이 많아 절대로 감동을 줄 수 없는 소설이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이와 정반대이다. 이론과 실제의 엄청난 괴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최근 화제의 작품인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전2권·살림간)은 그 간절한 사랑이야기에 대한 감동도 감동이려니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좋은 소설의 개념을 다시 숙고하게 하는 문제의 작품이기도 하다. 주인공 오인희와 성하상의 천년을 뛰어넘어 이루어내는 안타까운 사랑을 다루면서 작가는 소설적 시간과 공간을 가없이 확장한다.
아울러 기공·도술·명상등 근대이후 소설에서 기피해 왔던 초자연적인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소재들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감소시킨다기보다 진실한 사랑이라는 소설의 주제를 더욱 탄탄히 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소설의 초자연적인 소재는 통속적 무협소설이나 도술소설의 차원이 아닌 이른바 마술적 리얼리즘의 차원에서도 읽혀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정서가 동양적 환상성에 뿌리를 두고 있고 기법과 형식 또한 전통적인 설화예술과 은연중 맞닿아 있어 우리의 잠재된 이야기본능을 일깨워 준다는 점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고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지만 우리마저도 편안하게 감동으로 이끌어가는 것, 이것이 이 소설이 갖는 커다란 힘이라 할 것이다.<이화여대 교수 중문과>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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