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68개의 곰보자국. 피로 얼룩진 79년 12월12일 밤 국방부 대변인실과 기자실 양쪽 대리석 벽을 벌집처럼 수놓았던 총탄자국 수다. 다음날 새벽 국방부 기자실을 찾은 취재진들은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청사 뒤편 계단 등의 핏자국과 함께 지난 밤의 처절함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역사적 상처」였다. ◆총탄자국의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기자들은 이날 상오 8시께 청사 현관에서 당시 3군사령관이던 이건영 중장을 만났다. 허리엔 권총을 찬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웬일이냐고 물으니 장관이 찾는다고 해서 올라왔다며 돌아갈 때 기자실에 들르겠다고 했으나 소식이 없었다. 보안사로 연행된 것이다. ◆상오 11시께 생각지도 않게 12·12사건의 주역의 한 사람인 유모중장이 으스대며 기자실에 나타났다. 그 당시 기자실에 장군이 나타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군기법을 내세워 기자들의 취재를 원천 봉쇄하고 있던 시절이라 아무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쿠데타가 아니냐고 떠보았더니 그는 화를 벌컥 내고 일어서 나갔다. ◆벽에 남았던 총탄자국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감쪽같이 수리를 해버렸다. 기자실에 들어와 쿠데타 성공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폼을 재던 유모중장은 최근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았다. 이건영 중장도 참고인으로 검찰의 조사에 응했지만 두 사람의 입장은 그날 밤과 정반대다. ◆오늘로 12·12사건도 16년이 된다. 핏자국과 총탄자국은 이젠 볼 수 없지만 역사마저 지울 수는 없다. 구속되거나 퍼레이드 하듯 검찰청을 찾는 사건 주역들의 모습에서 그날의 아픔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역사는 규명되고 후세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을 실감하게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