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한의 겨울/정일화 편집위원(남과 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한의 겨울/정일화 편집위원(남과 북)

입력
1995.12.11 00:00
0 0

도무지 풀릴것 같지 않던 보스니아 문제가 풀리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89년 소련제국이 무너지면서 유고슬라비아의 연방도 제풀에 내려 앉게 되자 티토 독재아래서 숨을 죽여오던 연방내의 민족갈등이 폭발해 도무지 걷잡을수 없는 내전이 벌어졌었다.유고슬라비아의 중앙정부를 움직이던 세르비아계에 대항해 보스니아족과 크로아티아족이 독립을 선언했고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영토내에 살던 세르비아계는 세르비아정부(유고중앙정부)의 지원을 얻어가며 잔혹한 전투를 전개해 결과적으로 200만명이 죽고 부상당하는 대 참극을 빚어냈다. 유엔평화유지군(PKO)이 투입됐으나 보스니아―세르비아계들은 걸핏하면 이들 PKO마저 공격하고 포로로 잡아 어쩌면 이곳이 결국 또 한번의 세계대전장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더했다.

클린턴행정부의 끈덕진 외교노력으로 지난달 21일 내전 5년만에 이들 3국의 지도자들이 미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와 결국 잠정평화협정에 서명하고 헝클어진 인종·영토분쟁을 조정하는데 극적으로 합의했다. 회담장에 나온 3대통령은 타협이나 회담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인물로 널리 알려졌었다. 크로아티아대통령 프라뇨투지만은 원색적 호전주의자, 세르비아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세비치는 고집불통의 오만함, 그리고 보스니아대통령 이제트 베고비치는 예측할수 없는 공격성을 가진 자로 비판돼 왔다.

그러나 이들 원수같은 3 대통령은 결국 협상문서에 서명하고 악수를 나눴다. 보스니아사태를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세계의 이목은 일단 한숨 돌리게 된것이다.

이제 북한 문제만 남았다.

공산독재체제는 당초 빵을 준다는 조건으로 인민의 자유를 당이 몰수했었는데 빵과 자유를 모두 줄수 없게 되자 스스로 그 체제가 무너졌던 것이다.

북한이 빵과 자유를 다같이 줄수 없는데도 버티고 있는 것은 순전히 국가폭력 때문이다. 국가가 무차별한 폭력을 휘두르면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아무도 여기에 대항할수 없다. 공산주의의 폭력은 주로 「당중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스탈린, 티토, 마오쩌둥, 폴 포트(캄보디아인 200만을 학살한 크메르 루주당수)와 같은 실제 이름대신 단순히 「당중앙」이라는 이름으로 명령이 내려가고 많은 사람들이 「당중앙」이라는 이름에 의해 죽어갔다.

북한은 김정일이 아직 국가주석직을 승계하지 않고 있으면서 「당중앙」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일이 처리되고 있다.김정일은 추측과는 달리 7월에도 8월에도 그리고 11월에도 국가주석직을 승계하고 있지 않았다. 당분간 그럴 전망도 없다. 국가최고책임자의 자리가 비어 있는 가운데 「당중앙」이라는 이름의 공포적이고도 무책임한 통치가 행해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지난 여름내내 시끄러웠던 핵문제, 미사일생산, 홍수, 주석직 승계문제를 둘러싼 논란들은 흐지부지 돼 버리고 북한뉴스는 겨울철에 들어서면서 거의 끊어졌다. 낙엽이 다 져버린 겨울철이면 활동을 중지하는 게릴라전의 양상을 연상케 한다. 아마도 새 잎이 돋는 내년 봄까지는 별다른 북한 소식이 없을지 모른다.

해결의 실마리를 영 찾지 못할 것 같은 보스니아문제도 95년을 보내면서 일단 잠정협상에 성공했기 때문에, 종족분쟁도 없고 종교분쟁도 아니며 오직 냉전체제의 부산물일 뿐인 한반도문제쯤은 어느 계기가 오면 의외로 쉽게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갖게 된다. 겨울동안 한국은 내실있는 대북한 협상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