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위협 등 숱한고비… 용기갖고 임해야/언론의 성역없는 비판·조언도 크게 도움이탈리아 정치·경제계의 부정부패를 추방하는「마니 풀리테」(깨끗한 손)를 주도한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전검사는 8일『검찰의 철저한 독립과 언론의 성역없는 보도와 비판때문에 수사가 성공할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한이탈리아대사관 초청으로 2박3일 일정으로 7일 방한한 그는 이날 상오 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시 수사과정의 어려움, 한국정치상황에 대한 견해등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이탈리아에서 영웅대접을 받고있고 국민들로부터도 인기가 높은데 마니 풀리테운동은 계획적으로 추진한 것인가.
『영웅이라는 말을 듣는것은 쑥스럽다.나는 검사로서 해야 할일을 했을 뿐이다. 국민들로부터 인기가 있다는 말은 국민들이 그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는 뜻으로 사실 이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수사를 할 수있었다. 수사계기는 92년 2월 밀라노의 한 관리가 뇌물 5천달러를 받는 것을 현장에서 체포한 것이 발단이 됐고 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패사실이 실타래 풀리듯이 불거져 나왔다』
―수사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이나 검찰내부의 견제등은 없었나.
『이탈리아는 한국과 달리 검찰이 행정부가 아닌 사법부에 소속돼있어 실질적으로 완전 독립돼 있다. 사정활동이 성공하게된 배경은 이같은 검찰권의 독립보장과 이에따른 수사의 투명성등이며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언론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성역없는 비판과 조언을 하며 협조를 해 주었기 때문이다』
―사정수사로 정경유착등 부패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나.
『당시 정치 경제인을 포함, 모두 3천명을 조사했으며 이중 1천명이 구속기소됐고 수백명이 15년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감옥살이를 하고있다. 수사는 나혼자 한 것이 아니라 여러 명의 검사들이 「풀」제로 했다.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정경유착의 부패고리를 끊기는 매우 힘들다.
이 부패고리를 영구히 끊는 것은 사법적으로는 불가능하고 다만 처방이 있다면 윤리적인 방법과 교육이 있을 뿐이다』
―한국은 최근 전직 대통령을 구속하는등 부패와 과거청산을 하고 있는데 수사를 위한 조언을 한다면.
『한국 정치상황을 잘 알지못해 언급할 위치가 아니지만 수사가 잘되기를 바란다. 내가 수사할 당시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등 위험한 고비를 넘기기도했다. 큰 용기를 갖고 단호하게 수사를 해야할 것이다』
―사정수사는 정적을 제거하는데 악용될 소지도 있고 경제위기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을텐데.
『검사는 각종 증거와 여러 증인들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밝혀 정확한 판단을 해야한다. 이탈리아는 기소권한이 검찰이 아닌 판사에 있으며 불기소됐을 경우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한 추가 수사는 하지 않는다. 경제의 위기등을 말하지만 불법적 경제가 문제가 될 뿐 국가경제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검사를 그만둔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은.
『정치인들은 물론 경제인들중 일부가 나의 수사를 이용하려했기 때문에 사직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위험이나 두려움때문에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내가 맡은 사건은 모두 수사를 끝내고 구형등 소송절차까지 마쳤다. 일부 언론에서 정치에 참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현재의 교수직에 만족하고 있다』<이장훈 기자>이장훈>
◎피에트로는 누구…/이 반부패운동의 “국민적영웅”/전현직정치인등 1,000명 구속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전밀라노지검 검사(45)는 마니풀리테(깨끗한 손)운동의 전위에서 활약,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았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남부 빈농가정에서 태어나 31세에 뒤늦게 법조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92년2월부터 부정부패사건을 조사하면서 반부패 운동에 불을 붙였다. 그는 이후 3년여동안 부정부패에 연루된 수많은 전현직 고위정치인 공무원 기업인들을 사정의 칼날로 단죄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당시총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직권남용혐의를 받는등 정치적 압력을 받자 94년 12월 사임한 뒤 현재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카스텔란자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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