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에 관련된 재벌그룹 총수들에 대해 관대했다. 역시 이번에도 경제에 미치는 파급영향을 감안하여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본다. 검찰의 선택에 대해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경제에의 파장」 그것이 언제나 재벌총수들을 위한 면죄부로 이용되고 있는데 국민정서는 강하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노씨에게 35명의 재벌총수가 건넨 돈이 모두 2천8백억여원으로 돼있다. 검찰은 이들 재벌총수들이 제공한 돈을 전부 「뇌물」로 규정했지만 한보의 정태수 총회장만 구속기소하고 7개그룹의 총수들은 불구속 기소했으며 나머지 20여개 그룹의 총수들은 대가성의 미약등으로 입건하지 않았다. 배종렬 전 한양회장등은 신병을 확보하지 못해 기소중지가 됐다.
검찰은 사실상 한국경제의 주력들인 이들 재벌그룹 총수들을 전무후무할 정도로 무더기로 소환, 조사할 때의 긴장된 상황과는 달리 사법처리에서는 상당히 신중하고 보수적인 자세를 보여줬다. 국민도 재벌총수들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같다. 처벌은 여하간에 우선 정경유착의 정확한 규명을 위한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검찰조사는 국민의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는 크게 미흡한 것 같다.
하여튼 그동안 전국을 뒤흔들었던 노씨 비자금수사는 재벌그룹 총수들로서는 일단락됐다. 재벌그룹 총수들은 심기일전하여 국내외 실추된 이미지의 개선과 신뢰회복을 위해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할 책무가 있다. 물론 정치권 자체가 깨끗한 정치를 할 의지가 있어야 하고 국민이 또한 이를 적극 지지·협력하고 감독해야 한다. 그러나 재벌그룹 총수들의 결의가 역시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6공 시절만 해도 대통령의 금전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개연성을 이해한다. 그러나 기업측에서 적극적으로 유착관계를 추진했던 사례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재벌그룹 총수들은 이제는 『정치력을 사서 사업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어느 원로기업인의 충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뇌물을 받은 대통령은 구속되는데도 뇌물을 준 재벌그룹 총수는 구속이 면죄되는 것은 분명히 형평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재벌총수들로서는 엄청난 배려를 받은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시장개방 추세 속에서 경쟁력을 강화, 살아 남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경유착은 경쟁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것이고 보면 개방시장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도 근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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