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총장 연행재가 대통령에 건의노/거사때 육본측 지휘관 요정유인조전씨 구속후 검찰의 첫 소환조사를 받은 조홍씨는 12·12 당시 수경사헌병단장(대령)으로 육본측 지휘관들의 격리와 체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조씨는 12·12 당일 서울 연희동 전두환씨집 근처의 한 요정에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 김진기 헌병감등을 초대했다. 자신의 장군 진급 축하모임이었지만 전합수본부장이 하루전 조대령에게 그의 장군진급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서 『진급턱을 톡톡히 낼테니 수경사령관과 헌병감을 모시고 오라』고 지시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날 모임은 하오 6시30분 시작돼 7시50분께 끝났지만 뒤늦게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사실을 알고 급히 소속부대로 복귀한 정, 장사령관은 그때부터 상황을 파악, 합수부측에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조씨는 또 13일 새벽 장사령관이 수경사 병력을 동원하려 하자 당시 수경사헌병단 부단장이었던 신윤희 중령에게 장사령관을 비롯, 수경사에 모여있던 육본 지휘부측 장성들을 체포토록 했다. 검찰은 지난해 12·12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조씨에 대해 반란중요임무종사 및 상관살해미수 혐의를 인정했다.
경남 함안출신으로 육사 13기인 조씨는 12·12직후 육본헌병감에 올랐다가 82년 준장으로 예편한뒤 재향군인회 사업국장과 손해보험협회장을 지냈다.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 역시 12·12의 성격 규명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인물. 노씨는 12일 저녁 한남동 장관공관에서 총소리를 듣고 곧장 피신한뒤 미8군영내 한미연합사 상황실과 국방부등으로 옮겨다니다 13일 새벽 4시께 국방부를 점령한 1공수여단 병력에 의해 국방부 지하벙커 입구계단에서 붙잡혔다. 당시 최규하대통령은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합수부측의 정사령관 연행에 대한 재가를 10시간이상 거부하고 있었고 노장관은 뒤늦게 전씨와 함께 총리공관으로 가 최대통령에게 재가를 내리도록 건의했다.
경남 마산출신으로 육사 3기인 노장관은 합참의장(75년)을 지낸뒤 77년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노씨는 12·12 다음날 아침 정총장 연행사실을 공식발표한뒤 14일 국방장관직에서 물러나 한국종합화학사장과 자유총연맹 총재등을 지냈다.<박정태 기자>박정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