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박종규 후원으로 군내 파워형성/12·12 군권장악·집권 통치기반 핵심역할전두환씨의 5공정부는 「하나회 정권」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씨는 군내부의 하나회 인맥을 발판으로 12·12를 성공시켜 군권을 장악했다. 그가 5·17계엄확대와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강제진압을 거쳐 결국 정권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도 하나회 인맥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하나회는 전씨와 노태우씨등이 대위시절이던 5·16 직후 육사 11기의 영남출신을 중심으로 조직한 군내의 사조직이다. 전씨는 육사 후배들가운데 기수별로 선두주자들을 하나회로 끌어들여 진급과 보직을 챙겨주며 끈끈한 조직으로 키워나갔다.
하나회는 73년의 윤필용 사건때 부분적인 상처를 입기도 했으나 고박정희대통령과 박종규 전 청와대경호실장등의 후원으로 기력을 회복한후 군내에서 막강한 파워를 형성해갔다. 79년12월12일 밤 전보안사령관이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육군의 정통지휘체계를 마비시키고 군권을 장악한 것은 바로 하나회라는 사조직의 덕분이었다. 이날밤 전보안사령관은 수도권의 주요 지휘관으로 포진해있던 하나회출신 장교들에게 군의 정식지휘부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의 지시에 따르도록 했다. 80년에 권력의 전반에 나타난 신군부의 핵심도 이들 하나회출신 장성들이었다.
5공정권은 하나회의 「한국 경영시대」를 열었다. 5공정권하에서 화려한 역사의 한페이지씩을 장식한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안무혁 이춘구 박세직씨등은 모두 하나회 출신이다. 5공에서 6공으로의 정권이양도 본질적으로 「하나회에서 하나회로의 권력이양」이었다. 5·6공시절 육군참모총장과 보안사령관등 군의 핵심포스트도 하나회출신이 차지해 정권의 물리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하나회는 찬서리를 맞게 됐다. 김영삼대통령의 군개혁작업은 하나회의 제거가 핵심이었다. 하나회 출신은 자신의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급에서 배제되거나 전역조치됐다. 이제 노태우씨에 이은 전두환씨의 구속수감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회 조직은 역사의 마지막 장을 넘기게 됐다.<이계성 기자>이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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