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정도경영으로 건설외길 “재계 사표”29일 노환으로 별세한 수암 이재준 대림그룹명예회장은 78년의 한 생애를 건설외길로 걸으며 근검절약과 정도경영을 몸소 실천한 재계의 사표로 칭송받아왔다. 수암은 설렁탕 이상의 접대는 삼가고 양복 1벌로 10년을 지낼 정도로 청빈한 생활과 경영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일제때 창업한 대림그룹을 재계 13위로 성장시켰다.
수암은 조선조 선조대왕의 왕자인 인성군 의 10대손으로 일제의 식민지지배가 극에 달하던 1917년 경기 시흥에서 태어났다. 이재형 전국회의장은 이회장의 맏형이다.
수암은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군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뒤 상급학교에 진학하려 했으나 부친이 『일본인 밑에서는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며 만류,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수암의 부친은 그의 사업가 기질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기업인으로 키우기 위해 학업을 계속하는 대신 정미소에서 일을 배우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1939년에는 대림그룹의 모체인 부림상회를 설립, 목재 및 건자재업에 진출했고 광복직후에는 회사명을 대림산업(주)으로 바꿔 건설업에 전력했다.
60년대 중반부터는 해외건설시장에 진출, 대규모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사세를 크게 신장시켰으며 이후 요업 콘크리트 기계 석유화학 증권 엔지니어링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수암은 또 서울올림픽추진위원회 이사를 맡아 올림픽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 기여하고 대한건설협회장 전경련이사 건설기술연구원이사장을 역임하는등 사회봉사활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대림학원을 세워 육영사업에도 열의를 보였다.<김동영 기자>김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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