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 바람막이역할 못하는 것도 한몫/개방앞두고 안정기반 “흔들”국내증시가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외국증시쪽에서 나온 보고서 한장에 국내투자자들이 우왕좌왕하면서 증시가 혼란에 빠져드는가 하면 외국인투자자의 일거수일투족에 따라 주가가 요동한다. 증시개방을 앞두고 내실을 기해야 할 우리나라 증시의 자립체제에 큰 구멍이 뚫려있기 때문이다.
비자금파문이 한창이던 지난 7일 미국 메릴린치증권이 한장짜리 보고서를 냈다. D램반도체의 공급과잉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곧바로 국내증시에 치명타를 안겼다. 연일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며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의 주가를 하한가로 떨어뜨렸다.
삼성전자가 주가안정을 위해 자사주 취득에 나서고 국내 증권사들이 메릴린치보고서에 대한 반박자료를 내놓았는데도 투자자들의 발걸음은 다시 돌아서지 않았다. 삼성전자주의 하락은 LG전자 포철 한전 이동통신등 국내증시를 대표하던 핵심우량주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져 비자금파문으로 시작된 증시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증시는 아직도 「메릴린치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다.
지난 10월 중순에는 한국 제지업경기를 비관적으로 내다본 일본 노무라증권의 보고서가 제지업종의 지수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이에앞서 지난 4월에는 유화업계의 수익성악화를 우려하는 내용의 일본 다이와증권의 「유화리포트」때문에 유공 LG화학등 유화주들이 급락했다.
28일 주식시장에서도 「외국산 보고서」는 또한번 위력을 발휘했다. 비자금파문으로 큰폭으로 하락했던 한국이동통신의 주가가 이날 1만1,000원이나 뛰어올랐다. 미국 살로먼브러더스 증권의 한 분석가가 보고서를 통해 이동통신이 세계통신주식중 가장 저렴한 투자종목이라고 밝힌데 자극받은 국내투자자들이 앞다퉈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
요즘 투자자들은 소신있는 투자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바깥쪽」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외국증시쪽에서 또 어떤 보고서가 튀어나올지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있는 형편이다.
이에 대해 대신증권 한영균 국제영업팀 차장은 『외국증권사들은 자신이나 자국 이해관계를 반영해 전략적으로 보고서를 내놓기도 한다』며 『국내투자자들이 진위여부도 가리지 않은채 외국자료를 너무 신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증시의 동조화 현상에 따라 국내증시가 외국보고서나 외국인투자자의 동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대우경제연구소 신성호 연구위원은 『최근 국내증시가 외세에 끌려다니는 현상은 증시의 안정기반을 해칠만큼 심각한 측면이 있다』며 『이는 바람막이역할을 해야할 기관투자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신연구위원은 외세에 대항할만한 자생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국제화만 어설프게 서두를 경우 증시가 호된 시련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김병주 기자>김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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