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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동전」 등 정찬의 근작(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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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동전」 등 정찬의 근작(소설평)

입력
1995.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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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사유에 더해진 재미 “완숙미”정찬의 소설이 점차 완숙함을 더해가고 있다. 그의 근작소설집 「아늑한 길」에 담긴 중·단편은 하나같이 정제된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의 불행과 아픔을 증언하고자 하는 노력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문학동네」 겨울호에 실린 자전소설 「은빛 동전」은 우리 단편소설사의 백미에 해당되는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설적 형상화에 있어 숙련된 장인의 솜씨를 보여준다.

정찬의 초기소설은 대부분 신과 인간, 권력과 언어같은 둔중한 관념적 주제를 천착하는데 주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작품 전체가 무겁고 침중한 분위기로 가득찬 「관념의 격투장」이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문단 내에서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그의 작품이 일반독자들에게 일종의 소원감을 불러 일으킨 면이 없지 않은 것은 이야기의 재미를 압도하는 관념의 강도에서 연유한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작가는 최근으로 올수록 주제를 골조 그대로 제시하지 않고 거기에 적절히 살을 붙이고 신경을 이어주는 작업을 한층 면밀하게 함으로써 소설만이 가진 육체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에게 동인문학상의 월계관을 씌워준 중편 「슬픔의 노래」에서 진하게 배어나오는 서정성은 그의 이전 소설에선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으며 이러한 요소는 「은빛 동전」에 와서 더욱 풍요로운 결실을 맺고 있다. 작가 자신의 유년시절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은빛 동전」은 정찬의 관념편향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삶에 대한 하염없는 사랑과 긍정의 정신을 엿보게 해준다. 이 소설에선 지난 연대의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라면 으레 조우할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물질적 궁핍, 고부간의 갈등, 어머니의 병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불행과 개인적 과실을 넘어서 작가는 어린 시절 먹었던 탕수육의 기막힌 맛과 잃어버렸던 은빛 동전의 찬연한 빛남에 주목한다.

천사의 음식에 비유된 탕수육을 제공했던 고향동네의 중국집은 사라져버렸고 은빛 동전 또한 영원히 되찾을 수 없지만 이를 기억 속에서 반추하는 작가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것은 단순한 상실감이 아니라 오히려 삶다운 삶을 향한 형언할 수 없는 목마름이다. 그 목마름이 지속되는한 은빛 동전은 작가의 추억 속에서 영원히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남진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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