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18관련사건에 대하여 공소시효기간을 연장하는 특별입법을 추진한다는 결정과 함께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입법을 고려한다는 태도를 보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5·18관련사건은 그 주동자들이 10여년에 걸쳐 최고권력자의 지위에 있었고 그 주동자들이 구축해 놓았던 거대한 힘의 비호 하에 왜곡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이른바 문민정부라는 현정권이 들어서서도 검찰의 「성공한 쿠데타 불가벌론」이라는 어색하기 짝이 없는 법리구성에 의하여 그 진상은 묻힌채 간간이 TV드라마의 소재로나 등장하는 「지나간 얘깃거리」로 취급되는 정도에 이르렀었다. 우리가 무소불위의 권력에 아무리 길들여져왔다 하더라도 헌정제도를 파괴했던 일련의 역사적 진상을 15년전에 있었던 「얘깃거리」로만 모두들 지나쳐 버린다면 우리에게 국가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정부가 어떤 정치적 고려를 했든 뒤늦게라도 특별입법을 통하여 더 수사를 하고 사법심사의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결정한 것은 환영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법과 제도가 정치에 의하여 그 편의에 따라 이리저리 이용되는 법도구론적 행태의 또 한 모습을 보는 것같아 개운치만은 않다. 즉 당초 검찰의 「공소권 없음」결정은 전두환씨등의 내란죄를 인정하면서도 법무부령에 불과한 검찰사건사무규칙 제52조 3항 4호의 규정사유 10가지중 하나인 「피의자에 관하여 재판권이 없는 경우」를 적용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재판권이 없는 경우란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나 친고죄에 있어서 고소가 취소된 경우 또는 처벌법령이 폐지되어 명백히 공소제기가 불가능한 경우,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외국의 외교관(재판권이 없음)의 범죄에나 해당될 규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을 부당하게 확대해석했던 것이고 이는 정치적 자의의 발로였던 셈이다.
뒤늦게 특별입법을 결정함으로써 사태는 호전되었다고 보인다. 그런데 검찰의 주장대로 전두환씨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이 됨으로써 그들의 내란죄가 기수에 이른 것이라면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내란죄등의 공소시효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공소시효가 완성돼 처벌이 불가능해진 범죄에 대하여 소급하여 처벌가능케 하는 입법을 하는 셈이므로 형법상의 대원칙인 형벌불소급의 원칙에 반한다는 중대한 논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어떤 죄에 대하여 공소시효기간을 연장하는 입법이 공소시효 완성전에 이루어진 경우에는 죄형법정주의에 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두환씨등의 내란행위의 기수시기를 자기 뜻하는대로 헌법을 개정하여 선거인단선거에 의해 대통령이 되었을 때라고 봐야 한다는 견해에 의한다면 아직 공소시효는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새로운 입법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렇다면 전두환씨등의 내란행위는 언제 종료되었다고 볼 것인가의 문제에 귀착된다. 그 결론은 「진상」의 규명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남기게 되고 이는 곧 사실의 규명이라는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는 셈인 것이다. 무릇 법의 적용이란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 불과하다는 기초적 원칙을 고수하는 일이다. 「사실」이란 가치판단이나 법적 판단에 의하여 선택되어질 대상이 아니라 오로지 철저히 파헤쳐지고 규명되어야 하는 「역사」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따라서 내란행위의 기수시기가 언제인지는 사실(진실)이 낱낱이 다시 파헤쳐진 후에나 판단할 일이다. 그렇다면 진실을 밝힐 시간을 얻기 위해서라도 특별입법은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진상은 사법심사의 과정에서 최종적으로 드러나고 법적 평가를 받아야 하므로 소추기관이 유·무죄 또는 공소시효 완성여부를 판단할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은 5·18관련사건의 진상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앞서 말했듯이 TV드라마나 지극히 제한된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보았던 비디오 테이프를 통하여 막연히 추상화시켰고 이른바 5공청문회는 추상적 질문과 더욱 추상적인 답변이나 위증투성이로 구성된 허구만을 반복했을 뿐이다. 처절했으리라 여겨지는 민주시민의 항쟁과 끔찍한 희생, 그 후에 이어진 억압과 굴욕의 진상을 낱낱이 공유하지 못하는한 우리는 민주헌정을 꾸려나갈 시민다움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5·18관련사건의 진상규명은 우리의 헌법수호를 위한 경험적 기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제는 정치가 섣부르게 진실과 법에 간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법치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법과 정치권력은 날카롭고도 분명하게 준별되어야 한다. 양자의 대립과 갈등이 생긴다면 권력을 견제하는 의회가 입법과정을 통하여 해결하면 된다. 이번의 특별입법에 대하여 지레 판단하기는 이르지만 법의 지배를 받는 정치권력의 소산이기를 바랄 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