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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에서 거품 걷어내기(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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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에서 거품 걷어내기(장명수 칼럼)

입력
1995.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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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으로 연말경기가 썰렁하다. 다른해 같으면 송년회등 여러 모임으로 예약이 꽉 차있을 호텔과 고급식당들이 아직 비어있는 날이 많고, 평소에 식사하러 오던 손님들까지 크게 줄었다고 한다. 비자금 한파는 일반식당과 술집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연말 대목을 준비하던 백화점들도 울상이고, 윤달로 고전했던 혼수업체들은 다시 경기가 얼어 붙자 『비자금 소동으로 결혼이 줄어들리는 없는데 웬일일까』라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와 신정연휴에 해외여행자가 몰릴 것을 기대했던 여행사들의 예약창구도 한산하다.

중급정도 식당에서도 비자금 한파를 피부로 느낄수 있다. 평소에 예약없이 가기 힘들던 곳도 빈자리가 많고, 넓은 홀이 텅 비어있는 날도 있다. 한달전 비자금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는 사람들이 술집으로 몰려가 울분을 터트리는 바람에 술집마다 대만원이고, 음주운전 적발건수가 크게 늘어나 화제가 되었는데, 비자금 규모가 날로 불어나면서 술맛 밥맛 모두 떨어진게 아닐까.

특급호텔들과 백화점 경기가 저조한 것은 비자금 사건으로 재계 전반이 위축돼 있고, 사건에 걸려있는 재벌기업들은 송년모임이나 선물등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 예정했던 행사까지 취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영향권에서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것이 연말경기가 냉각된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비자금 영향권과 거리가 먼 보통사람들도 소비를 자제하고 있음을 뚜렷하게 느낄수 있다. 사회분위기가 뒤숭숭하고, 밥맛도 술맛도 떨어져서 일시적으로 소비가 억제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사태가 보통사람들의 생활에 알게 모르게 스며든 「거품」을 제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수백억 수천억원의 뇌물이 왔다갔다 하는것을 보면서 무슨 기분에 땀흘려 일하고, 한푼두푼 아껴서 저축을 하겠느냐는 것이 요즘 온 국민의 한탄인데, 부정부패 추방에는 국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보통사람들의 생활에서 거품이 제거되는 동안 유흥업소등 관련산업이 당분간 몸살을 앓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서 모두가 제자리를 찾게될 것이다. 그동안 고속성장이 계속되고 각종 투기소득 음성소득이 춤추면서 거의 모든 계층이 자기수준을 웃도는 생활을 해왔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과소비 풍조를 타고 유흥비·음식값·옷값등이 치솟아 어이없이 비싼 한국 특유의 가격구조가 형성되기도 했다.

충격으로 조용해진 연말을 보내면서 우리의 생활에 깃든 거품을 각자 걷어낸다면 우리 사회는 보다 깨끗해지고 탄탄해질 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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