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상처와 사랑의 아픔 통해 갖가지 인연의 소중함 새삼 일깨워「머나먼 쏭바강」으로 월남전쟁이 가져다준 상처와 아픔, 그리고 인간의 감추어진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 보여 주었던 작가 박영한씨가 모처럼 새 장편소설 「키릴로프의 연인」(열림원간)을 내놓았다. 반가운 마음에 이내 달려가 소설을 잡고 읽어 내려갔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도 여기저기 할퀴고 지나가면서 상처로 남아버린 월남전의 비극적 주인공 영조를 하나의 출발점으로 하여 이 사회와 역사가 차츰 외면하고 있는 그 고통을 들추어 내고 있다. 작가는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영조를 중심으로 나와 미스 케이라는 주인공을 내걸어 이 비극을 일반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결국은 이런 저런 사연으로 이 전쟁의 희생자들과 이어져 있으면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머리 속을 들쑤셔 놓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할 멍에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분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은 월남전이 과연 우리에게는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매력은 작가가 미스 케이의 모든 숨겨진 과거를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듯이 밝혀내면서 독자들을 어느새 잊혀져 있던, 아니 잊으려 했던 부끄러운 과거를 속죄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있다. 미스 케이는 월남전을 통해 무너져 간 영조의 추억 속에서 작가의 말처럼 「두 개의 끈」을 나눠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서 깊이 묻어 두었던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삶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려 한다. 오늘 우리가 얼마나 왜곡된 세계에 살고 있는가를 처절한 이야기, 즉 전쟁의 상처와 사랑의 상처의 이야기를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내다보게 하고 있다.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어져야 하는 것처럼 사랑의 아픔도 아물어야 한다. 그 길을 작가는 미스 케이의 긴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별안간에 찾아드는 가슴 속 옛 이야기들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볼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맺은 여러 가지 인연들을 소중하게 기억하면서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우리는 결코 그 곳으로부터 탈출하거나 그것을 망각해 버릴 수만은 없는 것이다. 특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추억 가운데 그것이 아픔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풀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들에 따라서는 신앙일 수도 있고, 신념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삶의 진실을 파헤쳐 그것을 밝혀내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키릴로프의 연인」은 연인들이 겪은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간직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소설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미스 케이나 영조의 이야기와 함께 「나」 자신이 함께 나누어야 할 추억이며 가치이기 때문이다.<성공회대 총장>성공회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