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대부분 친절하다. 길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세하게 가르쳐준다. 몸을 조금만 부딪치려 해도 「익스 큐스 미」와 「아임 소리」를 연발한다.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사과부터 하는 것이다.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뉴욕에 온지 얼마 안되는 기자가 포린 프레스센터에 등록할 때는 여직원이 자료를 일일이 찾아가며 각종 혜택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고 미국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지난달 우리로치면 주민등록에 해당되는 사회보장번호를 받으려 담당 부서에 갔을 때의 경험을 두고두고 곱씹게 된다. 많은 이방인(이민자)들이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찾게 마련인 이곳에서, 담당자는 기다리라는 퉁명스러운 말을 남긴채 자리를 떴다가 한참뒤에야 나타났다. 등록절차를 밟으면서도 그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운전면허를 따거나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필요할뿐 별다른 복지혜택도 없는 카드 한장 내주는게 대단한 특혜라도 베푼다는 식이었다.
이방인들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는 미국 공무원들이 모두 불친철한 것은 아닐 터이지만, 그의 행동은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반 이민 무드와 맥이 통해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했다.
얼마전 뉴저지주의 한 불법체류자 수용소에서 발생한 폭행사건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당시 간수들은 한밤중에 불법체류자들을 집단구타한 뒤 맨몸으로 무릎을 꿇린 채 「미국이 최고」라고 복창하게 했다고 한다. 연방 정부의 일부 기능을 마비시킨 예산논쟁사태도 결국 가난한 사람들과 소수민족 이민자들을 희생양 삼아 정부지출을 줄이겠다는 공화당의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해마다 40만명씩 몰려드는 불법이민자들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이 축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지난달 뉴욕을 방문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메시지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민자의 후손인 미국인들이 이민을 제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고립주의적 입장으로 후퇴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자랑해 온 역사를 부정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뉴욕=이종수 특파원>뉴욕=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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