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 표방 실용주의자/공산당과 차별화속 사회복지 강조/93년 총선도 승리한 41세 지한파19일 실시된 폴란드대선 결선투표에서 전공산주의자 알렉산데르 크바스니예프스키(41)가 당선됐다. 그의 승리로 공산주의자들은 바웬사 현대통령이 이끌었던 자유노조세력에 당한 참패를 6년만에 설욕한 셈이다.
그의 당선 요인은 1차적으로는 바웬사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다. 바웬사는 권위주의적인 통치스타일과 거듭된 실정, 충격요법의 경제개혁으로 인한 물가고와 높은 실업률등으로 재임기간 내내 인기하락을 거듭해왔다.
물론 반바웬사 분위기를 표로 연결시킨데는 온건하고 합리주의적인 크바스니예프스키의 대중적 인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선거구 구석구석을 버스를 타고 다니며 연설하는등 서방의 유세방식을 채택, 유권자들의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러한 유세방식은 그의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으며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언론들은 『국민들은 실용주의적인 크바스니예프스키에 표를 던졌지 민주좌파연합에 표를 던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다.
크바스니예프스키는 국영기업의 급진적인 사유화보다는 사회복지정책의 우선을 강조, 바웬사의 경제정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온건한 이미지를 내세우는등 과거 공산당과의 차별성을 부각 시키는데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모두로부터 거리를 둠으로써 승리한 것이다. 그는 당선이 확실시된 20일 『나는 사회민주주의자다』며 『공산주의는 이미 과거이며 부활은 당치도 않다』고 선언, 자신의 승리가 과거로의 복귀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가 「공산당의 발전적 승계자」, 「변신에 능한 카멜레온 정치인」이라는 양극단의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바로 이같은 과거와 거리를 두는 그의 자세때문이다.
정치가로서의 그의 능력은 93년 총선에서 이미 검증을 받았다. 그는 90년 고사직전이던 공산당을 사회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좌파민주연합으로 소생시켰으며 93년 총선승리를 통해 오늘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바웬사의 솔리대리티(연대)운동 본산인 그다니스크시에 소재한 그다니스크대를 중퇴했으며 영어 독일어 러시아어에도 능통하다. 바르샤바 교외의 대저택에 살고 있으며 부인이 부동산회사를 운영할만큼 경제력도 만만찮다.
국민들은 젊고 정력적인 그의 신선한 이미지만큼 새로운 정치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을 기사회생시켰던 것처럼 폴란드의 정치·경제적 난제들을 또한번 해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는 동구지역에서는 드물게 지한파로도 알려져 있다. 만능스포츠맨인 그는 폴란드 국가올림픽 위원장으로 88년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등 지금까지 2차례 방한했으며 한―폴란드의원 연맹 폴란드측 의장직도 맡고 있다.<조상욱 기자>조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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