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금융권서 무관한 인사 없을것” 긴장감/수사향배 따라 일대파란 불러올 가능성도검찰이 이원조 전의원을 소환조사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금융계에 「이원조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금융계는 이씨가 5·6공 시절 「금융계의 황제」로 불려왔던 만큼 이씨 수사에 금융계가 어떤 식으로든 연루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이미 재벌총수들에 대한 소환조사과정에서 이씨가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 중개역할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동안 검찰은 이씨에 대한 수사를 기피한다는 의심을 사왔으나 이처럼 이씨가 노씨 비자금 조성에 직접 참여한 사실이 드러난 이상 이번에는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란 지적이다. 이씨는 지난 93년 동화은행 비자금사건때 이미 안영모 당시 행장으로부터 2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은 바 있다.
이씨가 금융계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은 80년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면서부터다. 당시 제일은행이사였던 이씨는 막역한 친구사이였던 전두환·노태우씨와의 인연으로 국보위 상임위원으로 옮겨갔다. 이후 석유개발공사 사장을 거쳐 86년 은행감독원장에 취임하면서 금융계에 본격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은행감독원장 이원조」의 권력은 그야말로 막강했다.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씨는 금융에 관한 정책결정은 물론이고 은행장 인사에도 깊이 관여했다. 87년3월 시중은행의 배당률을 3%로 낮추라는 재무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오히려 당초안(4%)보다 높은 5%로 수정, 재무부를 굴복시킨 일은 당시 이씨의 위상을 잘 말해준다. 이씨는 시중은행에 대해 한편으론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다른 한편으론 그에 상응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의 영향력은 88년 은감원장에서 물러나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계속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융계에서 출세하려면 이원조씨를 잡아야 한다』, 『이원조씨에게 잘못 뵈면 자리지키기 어렵다』는 말이 5·6공 내내 떠돌아 다녔다. 금융계에 「이원조라인」 「원조맨」등으로 표현되는 「금융귀족」이 탄생한 것은 당연하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당시 은행장을 지낸 사람치고 이씨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라인은 지금도 건재하고 있을 정도로 뿌리가 아주 깊다. 검찰의 이씨 수사향배에 따라서는 금융권에 일대 파란이 일 것으로 관측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씨라인의 은행장들이 이씨의 비자금조성에 깊숙이 관련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당시만 해도 은행장의 목숨은 이씨가 쥐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이씨에게 협조하지 않은 은행장은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돈이 오가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계에선 이미 6공때 은행장 선임과정에서 잡음이 무성했던 S은행 전현직 행장등 당시 「이씨라인」으로 분류됐던 몇몇 인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한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서 인사치레로 떡값정도를 건네준 것까지 문제삼는다면 아마 안 다칠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이씨 수사가 금융계로 확대될 가능성에 우려를 나타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