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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보도 좀더 냉정할 필요/이재경 이대 교수(나의 지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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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보도 좀더 냉정할 필요/이재경 이대 교수(나의 지면평)

입력
1995.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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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위주 개인비리 추적에만 치중/권력구조·감시장치 문제도 다뤄야한국일보는 11월7일 「다른 국정도 살피자」는 사설을 실었다. 매우 적절한 방향제시다. 온 나라가 흥분하고 분노해서 한 사건에만 이목이 쏠려 있는 상황을 걱정하는 내용이다. 각급 행정기관의 민원업무, 추곡수매를 비롯한 민생정책 그리고 무장간첩 침투로 야기된 안보상황에 대한 고려 등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이 글의 골자다.

존 듀이(John Dewey)는 우리에게 교육철학가 또는 실용주의 철학가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언론학 분야에도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민주주의와 언론의 관계를 다룬 그의 글들은 요즘도 자유언론을 지탱하는 중요한 논거로 살아 있다. 듀이가 남긴 말 가운데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안에 존재한다(Society Exist Not Through, But In Communication)』는 명구는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 문제 보도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미국 일리노이대학 학장으로 있는 저명한 언론학자인 제임스 캐리는 듀이의 개념을 발전시켜 대중매체는 온 국민이 동시에 같은 체험을 하도록 함으로써 한 사회의 동질성과 통합성을 유지시키는데 기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언론은 거대한 국가적 의식을 평상적으로 주관하는 기관이 된다. 국민이 참여하는 이같은 의식을 통해 시청자와 독자들은 세상살이의 의미와 자신들 삶의 좌표 등을 매일 확인한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그날과 이후의 행동방침을 결정한다. 앞으로도 저축을 계속해야 하는지, 어느 정치인을 얼마만큼 믿어야 하는지, 또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일이 잘하는 일인지, 5·18특별법제정 서명운동에 참여할 것인지 등.

이같은 관점에서 요즘 우리 언론이 다루고 있는 노전대통령 비자금 관련 보도를 보면 몇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전체적인 보도의 흐름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지나치게 비자금의 향방과 관련인물의 추적에만 치우쳐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일보만의 문제는 아니다. 은행계좌의 추적이나 비자금의 은신처 그리고 부동산 투자대상의 보도에 있어 언론은 시중에 떠도는 풍문을 그대로 지면에 옮기는 경쟁을 하고 있다. 사실여부의 확인은 불필요한 절차인 듯한 느낌을 준다.

7일자 한국일보의 사설은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인식도 함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감정만을 자극하는 기사에서는 지도적 사회기관으로서의 무게를 느낄 수 없다. 어떠한 권력구조의 허점이 이같은 비자금 모금을 가능케했는가, 정치권 그리고 국가 지도자들의 도덕성을 제도적으로 감시하는 장치는 왜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는가 등의 문제에 대한 추적과 분석이 책임있는 언론, 권위지를 추구하는 신문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이번 사건의 보도를 지나치게 한 사람의 비리쪽으로만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취재방향이다. 좋은 신문과 나쁜 신문의 차이점은 역시 차별성있는 편집정책에 있다. 당장 독자를 잡아두는데는 흥미있는 추적기사가 더 효과적이겠으나 제임스 캐리가 얘기하는 국민적 공감을 창출하는 언론의 사명을 자임하는 신문은 좀 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에서 사건을 다룰 수 있는 역량을 키우고자 노력해야 한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국 언론은 퇴임한 대통령만 괴롭히면서 힘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취재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고 썼다. 과거 문제보다 현재의 보도가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나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면 상당히 타당성있는 평가로 보인다. 한국일보부터 이같은 평가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질적 도약을 시도하기 바란다.<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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