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땅부자였다. 소위 땅따먹기의 명수였던 것이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따먹으려고 안간힘을 쓰곤 했던 일이 떠오른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땅을 따먹어도 어둑어둑해지면 소용없는 일이 되곤 했다. 저녁 먹으라고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제각기 그어놓았던 땅의 경계선을 지워버리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땅따먹기가 시들해진 후에는 딱지모으기에 열을 냈다. 서랍으로 하나 가득 딱지를 모아 밤이면 남몰래 열어보고 흐뭇해했던 기억도 난다.비자금파문을 보면서 나는 그 옛날 나의 땅따먹기와 딱지모으기를 생각했다. 인생은 너나없이 유한한 시간에 갇힌 존재이다. 혈안이 되어 땅을 사들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긁어 모아도 삶이 다할 즈음 돌아볼 때 그것이 무슨 힘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참기쁨이 되고 참생명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천민자본주의에 몰입할수록 사람들은 돈이 행복을 보장하리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인간의 행복이나 기쁨은 의외로 아주 시시하고 하잘 것 없어 보이는데서 오는 것이 태반이다. 겨울이 오는 문턱에 노란 잎을 붙들고 있는 이름없는 들꽃 한 송이에서도 생명의 외경과 기쁨을 찾을 수 있고 추운 밤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들고 들어가 가족들과 나눠 먹으며 사랑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다. 특정한 누구누구를 아무리 비난하고 물고 뜯는다 해도 우리의 허탈함과 분노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보다 우리는 한 나라 국민수준의 평균치가 그 나라 지도자를 결정한다는 말의 의미를 되새김해봐야 할 것이다.
이 가을 작은 행복들을 찾아보자. 도심의 휘황한 불빛만을 좇는 부나비가 아니라 가을새벽의 찬 이슬같은 그런 투명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찾아보자.<김병종 서울대교수·화가>김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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