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측 거듭된 항의불구 일서 무성의 일관/에토장관 해임 등 가시적 조치 요구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한일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돼온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일외상의 방한이 우리측의 거부로 결국 무산됐다. 공로명 외무장관은 10일 고노외상의 방한가능성을 정식 타진하기 위해 외무부로 찾아온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랑) 주한일본대사에게 『이같은 상황에서 한일간에 생산적인 협의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방한의 의미가 없다』고 거부입장을 분명히 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일본총리의 한일합방 합법발언으로 촉발된 한일간 갈등이 고노 요헤이 일외상의 방한논의 과정에서 곪아 터진 것이다. 이는 특히 에토 다카미(강등강미) 일총무청장관이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양국관계가 이전보다 더 험악해진 데서 비롯됐다.
고노외상은 당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의 일본 주최와 관련, 준비상황 설명 및 상호 입장조율을 위해 한중을 순방할 계획이었으나 무라야마총리 발언이 돌출, 계획자체가 한차례 유보됐었다. 이후 한일관계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일본측은 고노외상을 「해결사」로 내세워 우리나라만을 단독방문하겠다는 뜻을 전달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에토장관의 발언이 터져나왔던 것이다. 이어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다시 무성의하고 형식적인 조치로 일관, 결국 화를 자초한 셈이 됐다. 정부가 고노외상의 방한을 거부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일본 내각이 에토장관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경미한 조치로 이번 일을 매듭지으려 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노외상의 방한까지 거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경하다. 즉 과거의 경우에서 처럼 형식적인 사과를 하기 위해 방한하는 것이라면 아예 올 필요도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일본측이 에토장관에 대해 해임등 우리 국민이 납득할 만한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동시에 일본이 근본적으로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 및 한일기본조약 해석에 있어서 전향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한일합방조약의 합법성에 대한 일본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에토장관의 발언을 무마하는 정도로는 양국관계를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판단인 것이다.
한일관계가 이처럼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면서 APEC 정상회담 참석을 계기로 이루어질 예정이던 한일간 정상회담도 불투명해졌다. 정부당국자들은 일본이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회담은 오히려 국민감정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더욱이 무라야마총리는 한일합방조약에 관해 문제의 발언을 한 장본인인 만큼 양국간에 막후협상을 거치지 않고는 정상회담석상에서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결국 양국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전 정지작업을 위한 협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으나 그 해법에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 진통은 앞으로 장기화할 공산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고태성 기자>고태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