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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이사국의 체면/문창재 정치 2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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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리 이사국의 체면/문창재 정치 2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5.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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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으로 온나라가 펄펄 끓는 가운데 모처럼 삽상한 뉴스 하나가 날아들었다. 9일 새벽 유엔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으로 뽑혔다는 소식이다.안보리 이사국 진출은 광복 50주년 새 한국사의 기념비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91년 9월 유엔에 가입한 것이 탈냉전시대 국제조류의 필연이었다면, 이번 경사는 국제사회에 더 공헌하고 인류평화와 복지 발전에 적극 이바지하라는 소명일 것이다. 유엔이 어떤 곳인가. 유엔의 최고 권력기구인 안보리가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얼마전까지 유엔 창설일인 10월 24일을 공휴일로 정해 기념한 데에는 회원국이 되고싶다는 국가적 염원이 담겨있지 않았던가. 그런 민족적 열망을 좌절시킨 옛 소련과 중국이 버티고 앉은 안보리란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공룡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나라 운명이 비바람 속의 촛불처럼 위태롭던 6·25동란의 참화에서 우리를 구원해준 것은 유엔이었다. 폭격과 방화로 교실을 잃고 천막속이나 운동장 한구석 나무그늘 아래 쪼그리고 앉아 운크라(UNKRA)가 제공한 교과서와 공책으로 공부한 노·장년층에게 유엔이란 참으로 높고 크고, 위대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그런 국제연합체에 우리가 이사국이 되었다.

그 뿐 아니라 나라이름 순서에 따라 97년 봄쯤에는 안보리 의장국 역할까지 맡게 된다. 우리가 오늘 국제사회에서 이만한 지위를 얻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그만큼 국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력이란 무엇인가. 올림픽을 훌륭히 치러내고 교역량과 국민총생산 규모가 세계 11,12위란 외형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보편적인 가치관을 존중하는 나라로 인정받아야 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인류평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품격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안보리 15개 이사국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유엔 예산 분담률과 평화유지활동(PKO) 예산을 늘리겠다 한다. 또 안보리 대책반을 두어 독자적인 유엔외교 강화를 꾀하겠다고 한다. 그것으로 족할 것인가. 위급했을 때 받은 도움에 보답하고 국제사회를 위해 돈을 더 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지구촌 곳곳의 분쟁지역에 PKO 요원을 더 많이 보내 땀 흘리는 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급한 것은 나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이다. 한번 나빠진 인상을 좋게 하기란 쉽지않다. 독재정권시대의 인권상황과 갖가지 탈법적인 사건들로 우리의 국제 신용도가 크게 떨어진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정치적 민주화를 인정받은 문민정부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한강다리와 고급백화점이 무너지고, 전직 대통령이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을 빼돌린 일로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고있지 않은가. 한국 근무를 경험한 외국 기자들에게서 『한국에서 일한 3년은 10년이나 되는 것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일들이란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었다.

지금 우리 모두가 통탄하고 부끄러워하는 비자금 사건 마무리가 우리의 국가이미지 개선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큰일난다. 정치적 이해와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그 많은 의혹들을 철저히 파헤치지 않고 넘어간다면 부패와 부정이 판치는 나라라는 이미지는 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에서 그렇게 손가락질받는 나라에 안보리 이사국이란 지위는 돈주고 양반감투를 산 연암 박지원의 소설(양반전)에 나오는 정선 졸부 꼴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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