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시인의 창 통한 역사유적 거닐기 근래에 있었던 군란을 다룬 TV드라마를 보며 느낀 것은 역사는 이른바 정사라고 하는 것이 일반민심과 얼마나 거리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검찰의 5·18에 대한 불기소처분 결정이 재래의 「성공하면 충신이요, 망하면 역적」이라는 식의 정치사관과 무관하지 않음을 볼 때 우리는 이제까지의 모든 관변의 언술 이면에 숨은 진실이 무엇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최근의 한 역사학적 입장은 정사조차도 특정한 지배계층의 자기합리화를 위한 이야기체계로 보기 때문에 역사는 본질상 허구의 소설(Fiction)과 다를 바 없다고까지 주장한다. 정말 요즘처럼 역사에 대한 불신, 사실에 대한 회의가 팽배해 있는 때가 있을까? 정통성을 가장한 역사보다는 차라리 숨어 있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심정 때문일까? 바야흐로 항간에는 야사, 비사로부터 풀어 쓴 역사, 고쳐 쓴 역사가 대유행을 하고 있다. 물론 개중에는 단순히 대중적 흥미를 자극하기 위한 것들도 있지만 정말 역사를 어제와는 다른 측면에서 자유롭게, 그러나 진지하게 이해하려 한 값진 노작도 드물지 않다.
심경호 강원대 국문과교수의 「한시로 엮은 한국사기행」(범우사간)은 역사연구서처럼 엄숙한 체제를 취하지 않고 역사의 무대라 할 이 땅의 유적을 중심으로 관련된 사실을 흥미있게 풀어나간다. 특히 심교수는 역사를 보는 힘을 역대 시인들의 눈, 곧 그들의 작품에 투영된 당세 인식으로부터 길어온다. 그리고 그것을 심교수 자신의 학문과 현실인식에 융합시켜 신선한 관점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가령 심교수는 압구정동에 얽힌 역사를 전하면서 조선 세조때의 권신 한명회의 개인별장이었던 압구정에 대한 당대 시인들의 신랄한 풍자를 인용하여 오늘의 권세가들의 행로를 묻는다.
강화도에 대한 역사기행에서 심교수의 역사인식은 더욱 이채를 발한다. 고려의 몽고시대 이래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숱한 외침에 시달려왔던 이곳이야말로 단군이래 제천을 행해왔던 민족의 성지이며 결국 이러한 터전 위에서 정제두 이후 소론계 학자들의 자주적 국학이 꽃피울 수 있었다는 심교수의 증언은 기존의 학술사 서술에 은연중 깔려 있는 주자학―노론계 중심의 역사인식에 대해 강력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다.
이상과 같이 엄숙하게 소개를 했으나 사실 심교수의 책은 시간과 공간, 운문과 산문이 함께 얽혀 역사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유려하게 번역된 한시들만으로도 심교수의 책은 이미 문학작품으로서의 재미를 느끼게 하고 곳곳에 안배된 고지도 또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다.<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정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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