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씨의 검찰 출두일정이 결정되었던 날 저녁 모 텔레비전방송사는 9시 뉴스시간에 노씨의 이틀후 출두모습을 시뮬레이션으로 방영했다. 흔히 우리가 보아왔던 검찰청 청사의 입구에서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이전에 소환되었던 사람의 몸체에 노태우씨의 얼굴을 붙여 합성해낸 것인 듯 했다. 분명히 다른 때같으면 초상권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는 영상물이었다. 뉴스시간에 아무런 부연설명도 없이 그같은 영상물을 보냄으로써 방송사 스스로 뉴스영상에 대한 신뢰를 깨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미 신종사업 각광
새로운 영상처리기술의 발달로 가뜩이나 뉴스영상에 대한 사실성의 신화가 위기에 처한 시대이다. 미국에서는 10여년 전부터 죽은 저명인사의 초상권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는 신종 대행사업이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리면서 확장일로에 있다고 한다. 85년에 관련법이 통과되면서 죽은 사람의 상속자가 그 초상에 대한 소유권을 사후 50년간 행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것의 활용을 대행해주는 회사들이 생겨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주고객은 물론 그레타 가르보, 잉그리드 버그만, 험프리 보가트,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몬로, 제임스 딘같은 온갖 신화를 남긴 연예인스타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인슈타인이나 지그문트 프로이트같은 학자들에다 말콤 엑스같은 민권운동가도 끼여 있다.
얼마전 제임스 딘을 상표로 사용해왔던 모 코미디언이 운영하는 우리나라의 속옷회사가 그것의 사용을 둘러싸고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렸던 것도 고인의 초상권 대행회사의 항의 때문이었다. 죽은 유명인의 초상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꽤나 수익성이 있어 보였는지, 최근 SONY회사에서는 마릴린 몬로의 공동 상속자였던 모 고아원과 그녀의 옛 연기스승으로부터 아예 그녀의 초상에 대한 권리 일체를 사버렸다고 한다. 앞으로 세계의 유수 기업들 간에 고인이 된 유명인들의 초상권 매입경쟁이 치열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들의 초상은 아직까지는 대부분 광고에 쓰이고 있다.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상품들이 죽은 이들의 이미지 덕분에 잘 팔려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광고주들중에는 살아 있는 유명인보다는 죽은 이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한다. 우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적은데다 뒤탈로 속 썩이게 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연예인은 살인혐의자로 재판정에 서기도 하고 마약복용이나 어린이 추행등의 스캔들을 일으키기도 해서 거금을 들여 제작해놓은 광고가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이들은 이미 확립된 이미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돌발사고로 그것이 훼손될 위험성도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초상의 활용영역은 광고 뿐아니라 무궁무진할 모양이다. 새로운 디지털 영상처리기술을 이용해서 죽은 이들의 가장 전성기모습을 복원하여 컴퓨터로 연기시킨 새로운 영상물이 제작되기도 한다. 예컨대 최근에는 죽은 험프리 보가트가 새로 만든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회분에 주인공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SONY사에서도 젊은 마릴린 몬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 영화를 기획중이라고 한다.
후기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예전에는 팔거리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 상품화하는 극상품화(Hyper―Commodification)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죽은 사람의 초상이 상품화하여 큰 재산이 되는 것도 그같은 맥락이다. 고인들의 초상은 그 후손에게 있어서는 새롭게 부상한 유산목록이다. 돈이나 재산을 물려받지 못했어도 훌륭한 조상을 가진 후손들은 명예로 마음이 넉넉하게 될뿐 아니라 물질생활도 넉넉해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어찌 죽은 부모의 초상을 팔아 치부할 것이냐고 하겠지만 이미지 관리만 잘하면 불경스럽지 않게 오히려 좋은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모 그룹의 홍보물에 등장하는 「무학자」에디슨의 사진을 보고 존경의 염을 가질지언정 딱하게 보지는 않는다. 또한 급격히 바뀌고 있는 가치관으로 미루어 보건대 초상으로부터 얻는 수익을 저작권으로부터 얻는 수익과 다르지 않게 인식하게 될 날도 머지 않은 것같다. 가까운 장래에 독특하고 훌륭한 이미지를 지닌 정치가나 과학자, 연예인들이 세상을 하직하면서 명분있는 공익사업에 금전대신 자신의 초상권을 기금으로 내놓는 일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깨끗한 얼굴 되게
어차피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비물질적인 것으로 가치가 이동되어 가는 것이 고도정보화시대의 특성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동산이나 뇌물같은 것을 은밀히 모아 후손에 물려줄 궁리를 하기보다 빛나는 공적과 깨끗한 얼굴을 남겨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나 후손의 정신적·물질적 앞날을 위해 얼마나 보람된 일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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