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설립에 필요한 시설·설비와 교원 및 재정규모를 다양하게 정해서 일정기준에 충족되면 대학설립을 인가받지 않고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게 하는 대학설립 준칙주의 도입은 대학설립을 획일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행 대학설립인가제도의 많은 폐단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하다.건국이후 우리의 대학설립은 인가제만을 고집해 모든 대학이 전학문분야에 걸쳐 백화점식으로 학과를 설치해야 하는 대학의 획일화와 대형화를 부추겨 왔다. 그 결과 학생들에게 적성과 소질에 무관한 학습부담을 강요했다. 획일적인 입시로 초·중등교육에서마저 특수성과 다양성을 키워주는 교육을 할 수 없게 하는 교육적 폐단을 낳았던 것이다.
교육선진국들을 보면 음악·미술·컴퓨터 뿐 아니라 특정분야의 학문만을 가르치는 단과대학 성격의 소규모 특수대학들을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도록 해 그 분야의 인재들이 마음껏 적성을 살릴 수 있게 대학교육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설립을 하려면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인가조건도 너무 까다롭고 천편일률적이다. 그래서 대학이 생겼다 하면 최소 25개학과에 입학정원이 1천2백명(총정원 5천명)은 돼야 하는 종합대학만 늘어났던 것이다. 수익용재산도 최소 1천2백억원에 교지만도 10만평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등 현실과 괴리된 조건이 너무 많다.
이처럼 현실을 외면한 인가조건을 대폭 완화하고 대학설립준칙을 다양하게 정해 그걸 갖추면 교육부의 인가를 받지 않고 대학을 설립케 하는 준칙주의를 도입키로 한 교육개혁위원회의 결정은 대학설립제도의 한차원 높은 개혁이라는데서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인가없이 대학설립을 허용하는 설립준칙주의는 교육선진국처럼 신용사회가 정착된 곳에서 꽃필 수 있는 제도다. 정부가 나서서 교수와 교지확보기준을 제시하고 수익용 재산규모를 법령으로 제시하는데도 눈가림식의 설립요건을 갖춰 일단 대학인가만 받아 대학을 설립하면 학생등록금에 의존해 대학경영을 하는 것이 관행처럼 된 우리 사회에서는 설립준칙주의가 잘못하면 대학설립사태를 야기할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고학력풍조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너도나도 대학간판을 내걸고 제멋대로 학사증이나 남발한다면 대학교육풍토를 더욱 저질화시킬 소지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러한 부작용과 역기능을 막자면 대학설립자유의 폭이 늘어나는만큼, 설립후의 관리를 철저히 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평가인정제를 엄격히 적용해 일정기간의 평가를 받은 결과가 수준에 미달하면 학생모집을 금지시키는등 강경한 제재를 해야 할 것이다. 준칙주의가 저질대학의 사태를 낳게 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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